말씀하옵소서!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

좁은길을 걸으며 2007. 3. 9. 15:59

 

녹차밭에 앉지마라. ㅎㅎㅎ 그래요 신년 첫날에 해돋이 안 가고 녹차밭에 갔어요 그곳이 하동 화개면이었어요 ㅎㅎㅎ 그리고 남해댁로 해서 왔지요 ㅎㅎㅎ

 

 

 

        하나님을 경험하며 사는 인생             2006/01/28/주일

                    (시편119편 65-72절)              전주서광교회 이송로목사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체험을 얻는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사실 체험을 얻는다는 것은 곧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것에 대한 경험을 얻는다는 뜻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육신의 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인간의 생각에 불과합니다.

시편에서 일찍이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시14:1)고 결론지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훌륭한 인생을 살려고 한다면 우리의 인생의 길목에서 하나님을 만나야 하고 하나님을 경험하는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전에는 그 누구도 행복한 인생이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을 외면하고 살아간다고 해서 하나님을 외면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가령 내 호머주니 속에 5천원권이 들어있다는 것을 외면한다고 해서 5천원이 없어지거나 거짓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가령 여러분이 목사님의 호주머니 속에 5천원권이 들어 있다는 말은 거짓말이야라고 한다고 해서 참이 거짓되는 것은 아닌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여기 보십시오. 분명히 5천원권이 여기 있지 않습니까?

다만 이것을 꺼내 보이기 전에는 여러분이 의아심을 가졌을 뿐, 그것은 참된 것으로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 중에 하나님을 본 사람이 있습니까? 그렇게 해서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 아니 지금도 하나님을 경험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을 무엇으로 알 수 있습니까?


예수님 당시에는 하나님을 이렇게 보여주셨습니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의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1:18).

이 땅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을 보아서 하나님을 알 수 있었습니다.

어느날 예수님의 제자 빌립이 하나님을 보여달라고 했습니다. 이 때 예수님이 골똘히 고민을 하시거나 당황하신 것이 아니라, 당장에 그를 책망하셨습니다.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요 14:9).


그러나 오늘 이 시대에는 예수님이 여기에 육신으로 계시지 않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까?

오늘날은 하나님을 이렇게 보여주십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 뇨?”(고전 3:16).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고후13:5),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갈2:20) 등의 말씀을 통해서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심을 통해서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계신 증거요, 또한 하나님을 만난 증거로 작용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바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언젠가부터 이런 체험 속에서 하나님을 경험하며 살아고 있습니다.

그래서 행복하다고 말하는 것이며 실제로 하나님의 자녀로서 늘 하나님을 향하여 ‘아바 아버지시여!’라고 부르며 그분과 사귀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만일 아무런 확신도 없이 맹목적으로 이렇게 하는 것이라면 한계가 있을 것이고 결국 교회를 떠나고 신앙생활을 포기하게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혹시 잠간 교회를 떠나서 세상에서 방황하고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내가 언젠가는 하나님께로 돌아가야지!”하면서 마음에 갈급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체험한 하나님을 외면할 수가 없어서 그런 반응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사람만 찾아낸다 하더라도 한국교회 다시 새롭게 부흥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많은 신자들이 실제의 삶 속에 하나님을 경험하며 살지 않고 마음에서부터 하나님과 너무나 먼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현대 크리스챤들이 그렇게 살아가기가 쉽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지난 한 주간만 생각하더라도 그렇습니다. 비단 오늘 교회에 나와서 예배드리고 있지만 정말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면서 예배를 드리고 있느냐고 물어봐야 할 만큼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분들도 많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하루 하루 살아온 삶을 되돌아 보라. 과연 하나님을 경험하면서 살았는지요?

아니면 세상 근심걱정에 마음이 눌려서 그런 것들만 분주하게 좇아다녔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살아계신 주 나의 참된 소망 걱정근심 전혀 없네....)

현대인의 삶은 무엇에겐가 쫓겨 다니면서 하나님을 경험할 시간을 갖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늘 바쁘다 바뻐 하면서 무엇에겐 가에  쫓겨 다니는 삶을 삽니다.

그러니까 당신이 잘 알고 있는 그 무엇? 그것에게 쫓겨 다니는 삶이란 알고 보면 가장 불행한 삶의 원인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을 경험하는 시간을 차단하는 최대의 원수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여유를 갖지 못하고 쫓겨다니며 살라고 지으시지 않으셨습니다. 문제는 우리 자신입니다. 신실한 성도는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나님을 경험하는 일에 방해되는 요소들을 제거하기 위해서 무단히 노력을 견주하고 살아갑니다.

여적으로 예민한 사람은 새벽기도 한 번 빠지는 것을 결코 예사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둔감하게 되기 시작하면 주일을 범하는 것도 쉽게 합니다. 벌써 하나님을 경험하는 생활에서 멀어졌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나름대로는 정당한 핑계와 구실을 만들지 모르지만 따지고 보면 스스로 무엇에겐가 속고 있는 것입니다. 마음이 물질에 쫓겨다니든지, 아니면 출세욕에, 명예욕에 쫓겨다니든지, 아니면 세상 쾌락에 쪽겨다니든지...그럴 것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보나마나 악인의 삶처럼 나름에 날아다니는 겨와 같이 허망하게 될 것입니다.


알고 보면 이와같은 삶이 다 ‘그릇 행하는(가는) 삶’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고 잘 될 인간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사랑하시기에 택한 백성을 삼으셨습니다. 그러기에 잘못된 길로 가면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서라도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만들어 주십니다.

바로 그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상관짓기를 원하십니다. 그 방법 가운데 하나가 고난을 주시는 방법입니다.

그런데 요즘 잘못된 신비주의에 빠진 사람들은 고난 가운데서 주님을 찾는 것보다는 신비주의적인 체험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려고 합니다.

물론 우리들도 때로는 하나님께서 신비의 체험을 하도록 만들어 주십니다.

그러나 신비주의자들은 매번 신비를 경험하려고 일부러 카타리시스 속으로 빠져드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런데 빠져서 신앙생활을 하게 되면 본인의 신앙은 많은 손상을 입든지 손해를 보게 됩니다.

우리는 지정의(知情意)를 통해서 인격적인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건전한 신앙 속에서 매일 말씀을 읽는 가운데서, 기도 속에서, 그리고 주님을 생각하면서 사는 그 속에서 하나님을 경험할 줄 아는 사람이 바른 신앙인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인물들을 보면 대부분 고난의 깊은 자리에서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

욥은 털어도 먼지가 안 날만큼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를 고난의 깊은 자리에서 만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욥은 고백합니다. 어쩌면 그는 구약에서 십자가를 경험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욥은 “왜 나를 놔주지 않습니까? 분초마다 왜 나를 간섭하십니까? 하나님 제발 저를 놔주세요. 내가 뭐관대 그렇게 소중히 여기십니까? 제발 내 멋대로 하게 놔 두세요! 왜 내게 침 삼킬 틈도 안 주십니까?”(욥7:17-19).

끝내 그이 고백은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만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욥42:5).

관념론적인 신앙이 아니라 체험적이고 경험적이 하나님을 만났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그러기에 욥은 머리 속으로만 뱅뱅 도는 신앙이 아니라, 영혼 깊은 곳에서 인격적인 하나님을 만났던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고난이 없으면 과연 신앙생활을 했을까? 고난이 없었더라면 여러분의 신앙이 모질게 건강하게 자랄 수 있을까?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67절).

이것은 정말 신앙의 깊이를 아는 자만이 할 수 있는 영적인 고백입니다. 껍데기 신앙으로는 이 고백을 할 수 없다. 내가 며칠 전에 우리 성도 위문을 갔더니 그 자녀가 서울에서 내려와서 병간을 하길래 물어봤습니다.

“자매님, 신앙생활 하시죠?”

“저는 랄라리입니다.”

혹시 여러분 스스로도 “나는 달라리입니다!”라고 말하고 계신 분들은 안 계십니까?

하나님을 경험하십시오. 만일 하나님을 경험하기 위해서.....말씀을 배우고 묵상하지 않는다면....

결국 고난을 통해서...연단하실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도 속으로 “나는 랄라리입니다!”라고 말할 사람이 있습니까?


날마다 하나님을 경험하는 자리로 나아갑시다. 날마다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만나고 동행하며 삽시다. 하나님은 예배시간에만 계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어디로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항상 손잡아 주시며 함께 속삭이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한 주간 내내 마음 속에서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살다가 겨우 주일날 교회 나오는 정도라면 그것은 그야말로 랄라리가 아니겠습니까?

이러다가 어느 날 고난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때서야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주여, 살려주소서!” 외치는 베드로처럼 하나님을 찾게 될 것입니다.


인생 가운데서 그냥 풍랑을 만나 거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여러 분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고난을 통해서라도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시고 올바른 길로 돌아오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고난을 만났다 할지라도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나를 버리시지 않고 찾아와 주셨구나!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119:71).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에게도 이런 고백을 받으시기를 원하십니다.


고난이 유익입니다. 고난의 길에 접어들지 않았더라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알지 못하고 오히려 교만하여  맘대로 고집하며 종교인으로 살게 될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은 고난의 자리로 이끄시고 낮추시고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께닥게 하시고 거기서 만나주십니다.

야곱도 그랬고, 모세도 그랬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현재의 삶속에 고난이 있습니까? 그것 때문에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겸손히 엎드려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사55:6)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다시금 그 주님과 아름다운 교통을 이루시고 새로운 경험 속으로 나아가는 복된 성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탕자를 생각해 봅시다. 그는 부모님 곁을 떠나가는 순간 부모님을 이식하지 않고 제 맘대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언제 그 부모님을 떠올렸습니까? 그가 정말 고난 가운데 처했을 때 비로소 아버지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군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눅15:19).


야곱...


우리가 하나님을 경험하며 산다면 내 마음의 안식처를 발견한 사람입니다.

아인슈타인과 같은 사람도 그 박식한 두뇌로 하나님을 외면해 보려고 했지만 노후에 결국 기독교 신앙에 귀의하면서 이렇게 게 고백합니다.

“나는 평소에, 특별히 젊었을 때 교회를 경멸했다. 교회를 무시했다.

그러나 내 조국 독일이 어두워졌을 때, 그리고 나치의 핍박 아래 있었을 때,

내가 경멸하고 무시했던 교회는 우리 민족의 유일한 소망이었고 사람들의 안식처였다.

그리고 인생의 석양녘에 나는 교회 이외에 내 영혼의 위로를 경험할 수 있는 장소를 찾지 못했다.

나는 이제 교회로 다시 돌아온다. 하나님께로 돌아온다.”


우리는 하나님을 외면하며 살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일찍 돌아오십시오. “나 집에 돌아갑니다. 어머니 기도 못 잊어(나 집에 돌아갑니다. 아내의 기도 못 이저~!) 새사람되어 살려고 나 집에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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