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하옵소서!

빛으로 오신 예수님(성탄절 설교)

좁은길을 걸으며 2006. 12. 26. 15:07

 

 

여가 한 멋진 남자가 하모니카를 불고 있네요 [천사들의 노래가 하늘에서 들리네]라는 찬송을....

 

 

                 빛으로 오신 예수                   2006/12/25/성탄절

                    (요한복음1장1-14절)               전주서광교회 이송로목사


늘은  역사적인 성탄절입니다. 오늘은 [빛으로 오신 예수님]에 대한 말씀을 통해 은혜를 함께 하고자 합니다.


고대 아테네의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대낮에 등불을 켜 들고 “인간은 어디에 있는가?”라고 외치면서 거리를 방황하였다고 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디오게네스를 미쳤다고 했겠지만 디오게네스가 보는 세상은 진리가 세속적인 욕망에 가리어져서 칠흑같이 어두웠습니다.

어느날 디오게네스의 명성을 듣고 감명을 받은 알레산더대왕은 디오게네스를 찾아왔습니다. 이 때 디오게네스 길거리에 있는 나무 통속에 들어가서 햇볕을 쬐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알렉산더 대왕은 “원하는 것이 무엇든 간에 다 내게 말하시오. 내가 다 들어주겠소.”라고 했습니다.

이 때 디오게네스가 입을 열더니, “햇볕을 쬘 수 있게 비켜주시오.”라고 했습니다.

아마 지금도 옛 그리스철학자 디오게네스가 한국 땅에 살아서 다닌다면 어떻게 행동하겠는가를 생각해 봅니다.


그런데 그 이후 등불을 들고 다니는 분이 아니며, 철학자도 아닌 한 분이 나타났습니다.

친히 “세상을 비치는 빛”으로 오신 분이 계셨는데, 바로 그분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님”입니다.

친히 ‘빛으로’ 오셨던 것입니다.

그 철학자보다 월등히 뛰어나신 하나님의 아들이 빛으로 오셨는데, 그분은 창조 때에 빛을 지으신 분이시기도 합니다.


왜 빛을 가장 먼저 지으셨을까요?

그것은 모든 생명체가 활동하는데 있어서 필수적인 조건 가운데 하나가 빛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인간이 과학을 한다고 말하기 전에 훨씬 뛰어난 프로젝트를 가지고 가셨습니다.

인간은 그저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것을 가지고 연구할 뿐이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오늘 요한복음 말씀에서 그분이 빛으로 오셨다고 할 때에 그 빛은 물리적인 빛이 아니라, 인간들의 죄를 밝히는 ‘영적인 빛’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세상은 제아무리 지혜 있고 똑똑한 것처럼 보이지만 ‘어둠의 자식’들이며, ‘죄악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오셔서 이 땅 위에 ‘복음의 빛’으로 세상을 밝혀주시지 않았더라면 인간들은 아직도 무지에 갇혀서 우상숭배나 하고 있고, 폭력과 살인, 기근과 재난, 질병의 문제를 퇴치할 수도 없어서 하나의 막연한 숙명론에 빠져서 죄와 슬픔, 좌절과 절망의 늪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며 살다가 멸망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생명의 빛’으로 세상을 환하게 비춰주셨습니다.

지금도 보십시오. 예수의 참된 복음이 들어가는 곳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기독교가 가는 곳에는 학교와 병원이 세워지고 악귀와 미신이 물러가고 댐이 건설되고 민주주의가 꽃피게 되었습니다. 그만큼 인권이 강화되고 여성은 물론 아이들까지도 대접받는 사회가 되어지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바로 이런 것들만 봐도 기독교는 ‘생명의 종교’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5절)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사람들이 얼른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얼마나 큰 축복이겠습니까?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굉장히 문명의 첨단을 달려가고 있는 것 같지만 영적인 무지에 갇혀서 정작 보아야 할 영적인 문제, 영혼의 문제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망각한 나머지 모든 것이 ‘육체 길들이기’로만 치닫고 있습니다.

결국 그들은 어디를 향해서 간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들의 눈에는 술집과 식당과 백화점은 보여도 교회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한국처럼 복 받은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이쪽 평화동에만 교회가 80개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렇게 교회가 많은데 예수 안 믿고 죽는다면 그 사람은 ‘쌀독 옆에서 굶은 죽은 쥐’나 다를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9-10을 보십시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치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을 그를 알지 못하였고...”(9,10절).

전기불도 빛이요, 태양빛도 빛이며, 반딧불도 빛입니다. 이것들은 물리적인 빛의 범주에 속하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영적인 눈이 열리지 않으면 쉽게 알아볼 수 없는 ‘영적인 빛’입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어떻게 쉽게 그분을 ‘하나님의 아들’로, ‘구세주’로 알아볼 수가 있습니다.

아니 세상 어두움의 주관자들은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시키고 말았습니다.

그 죄가 얼마나 크겠습니까?


그런데 보십시오. 우리 인류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한 가지가 있습니다.

바로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마음에 받아들이는 문제입니다.

만일 받아들이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에 대해서 잘 얘기 해 주고 있습니다.

12절은 유명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얼마나 위대한 선언입니까? 대학을 나오면, 100억을 가지면, 키가 185cm이면, 아니 자선사업 1억 이상 하면....그런 것들이 아닙니다.

누구나 다 마음만 열면 되는 문제를 말씀합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3:20).

너무나 쉬워서 못합니까? 너무나 쉬워서 틀렸습니까? 너무나 쉬워서 어렵고 복잡한 것을 선택하시겠습니까?


그저 예수님을 ‘생명의 구주’로, 생명의 빛’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하나님의 자녀’라는 특권을 부여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노다지가 어디 있습니까? 어디 세상 왕의 아들의 신분에 비할 바가 되겠습니까?

이런 값진 선물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어리석은 인간들은 코앞의 빵 몇 조각에는 탐이 나지만 이런 영원한 가치의 것은 깨닫지 못하고 푸줏간으로 끌려가는 미련한 짐승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은 성탄절입니다.

우리는 이 생명의 빛을 받았고, 영원한 생명의 가치를 깨달았기 때문에 이 자리에 와 있습니다.

사실 이 성경이 기록된 것은 우리 믿으라고 주신 선물이 아닙니다. 온 세상이 다 이 복음을 받아야 하겠기에 ‘영원한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기록으로 남겨주신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들 중에 이 자리에 앉아 계시지만 아직도 예수님을 ‘생명의 주님’으로 영접하지 않은 자가 있습니까?

지금 이 시간 그분은 기쁨으로, 그리고 정중하게 맞이해 드리시기를 원합니다.

그러면 내 마음 속에 있는 어두움의 세력은 물러가고 영혼이 밝아지며 새생명으로 거듭나게 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내가 군대 막 전역하고 서울 북가좌동 황씨 집에 자취방을 얻어서 들어갔는데, 내가 살고 있던 건너 방에 목사님이 살고 계셨습니다.

그는 침례교 목사님이었는데 목사님은 시각장애인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성경을 줄줄줄 외우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때 그분이 주로 부르는 찬송이 있었는데 지금도 기억에 생생해서 한 번 불러봅니다.

[죄 가운데 사는 사람은 그 눈이 어두워도 그 죄악을 씻는 날에는 그 눈이 밝아지네 후렴] 영광 영광의 주 영광 영광의 주 밝은 그 빛 내게 비치었네 영광 영광의 주 영광 영광의 주  이 세상의 빛은 오직 주 예수라](찬96장3절).


육신의 눈이 멀쩡하다고 해서 세상을 바르게 보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더군다나 영적인 세계를 아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실로암 못가에 있는 소경의 눈을 뜨게 해 주셨습니다.

사람들은 소경이 눈 뜬 것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습니다. “네가 어떻게 해서 눈을 어떻게 되었느냐?”

그럴 때 그 소경은 분명히 대답을 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토 오신 분”이 내 눈을 떠게 해주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 말을 했다가 그냥 야단맞고 쫓겨났습니다.

그 다음에 예수님이 그를 만났을 때, “네가 인자(예수)를 믿느냐?”도 물었을 때 “주여, 그가 누구오니이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육신의 눈을 떴다고 소경이 아닌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지 않으면 눈을 떠고 맨날만날 죄만 짓고 사는 인간이 아니겠습니까?

차라리 소경으로 있는 것이 더 좋을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은 소경에게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요10:37).

이 때에 소경은 고백했습니다.

“주여, 내가 믿나이다”(요10:38). 그리고 절을 했습니다.

모두 따라서 합시다. “예수님, 나는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나의 생명의 주님으로 믿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해야 합니다. ‘영접한다’는 말은 ‘믿는다’라는 뜻의 같은 맥락의 말로 통합니다.

예수 믿어야 합니다. 예수 믿어야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예수 믿어야 새로운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예수 믿어야 천국을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예수 믿어야 영적 세계를 볼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와 같은 놀라운 ‘영적 선물’을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친히 육신을 입고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아버지 품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요1:18)이 바로 우리가 믿는 예수님입니다.

그분이 어두운 세상을 밝혀주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아직도 이 땅은 어두운 구석이 너무나 많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문화, 예술, 과학... 어느 분야도 온전한 데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빛이 비쳐야 합니다. 바로 그 빛을 받은 참 신자들이 들어가서 빛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수님은 빛으로 오셨습니다.

무엇보다도 아직도 그리스도를 모르고 무지몽매하게 살아가는 영혼들에 이 ‘복음의 빛을 비추어’ 합니다.

우리 민족뿐만 아니라 온 세상에 그렇게 되기를 기도하고 또 가서 전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본분을 다 하는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대저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하리라”(합2:14)

이 말씀이 이루어지기까지 우리는 온 세상에 그리스도의 빛을 비추는 빛의 사자들로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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