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하옵소서!

좋은 부부

좁은길을 걸으며 2006. 5. 21. 18:11

씀바귀를 보셨나여?

 

                                좋은 부부                     2006/05/21/주일

                          (에베소서6장22-33절)     전주서광 이송로목사


나님께서는 우리 부부들이 행복하게 되기를 바라십니다.

부부가 하나 되어 하나님 나라의 동역자가 되어 주의 뜻을 이루어 가기를 바라십니다.

남녀가 결혼하면 자녀가 있든지 없든지 이미 가정은 세워진 것입니다.

이 둘이 만나서 마음만 하나가 된다면 못 이뤄 나갈 것이 없습니다.


하나 물어보겠습니까?

부부간에 쓸 수 있는 가장 친밀하고도 아름다운 표현(칭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여보’, ‘당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여보(女寶)는 보배와 같은 여자라는 말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통상적으로 남편이 아내를 부를 때 쓰는 말입니다.

당신(當身)은 서로 떨어져 있는 것 같지만 ‘나의 몸’이란 뜻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주로 여성이 남편을 부를 때 사용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에 낮춤 말인지, 높임 말이 잘 분간이 안 가는 말이 나왔는데, 그것은 남편을 ‘오빠’라고 하고, 또 아내를 ‘자기’라고 부르기 시작하면서부터 서로에게 존경하는 마음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요즘 여성들이 친구들끼리 자기 남편을 향해서, ‘옆치기’란 말을 쉽게 써는 풍토가 생겨났다고 합니다. 그만큼 남편들에 대한 존중성이 사라진 시대를 맞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여보’와 ‘당신’이란 말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깊이 새겨봐야 할 때라고 생각을 합니다.


게다가 요즘 유행어 가운데 ‘닭살 부부’라는 말이 있습니다. 서로 피부를 맞닿는 것을 싫어하는 것 말입니다.

그 다음 얘긴 뻔한 게 아닙니까?

사실상 이렇게 되면 사단에게 무차별적인 공격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결국 이혼을 생각하게 될 것이고 다른 데로 눈과 마음을 돌리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렇다고 쉽게 이혼하면 됩니까?

그럴 힘이 있으면 다시 힘을 모아 예전보다 더 애정 있게 살아갈 수는 없을까요?

충분히 있습니다. 그러나 마귀는 “이 사람과는 절대로 안 된다!”는 부정적인 생각만 불어넣어 줍니다.


남자들은 만나서 가정 얘기하면 “야, 그래도 살아야지! 조강지처라는 말 못 들어봤어! 나이 먹어보라구. 그래도 기댈 곳은 아내 뿐이야!” 이렇게 나오는데, 여성들은 그렇지 않다는 말을 들을 때 무엇이 우리 사회의 비극인지를 생각나게 만듭니다.

여성들은 모이면 “얘, 싫으면 헤어져라야! 뭐 하려고 그렇게 붙어서 불행하게 사느니? 쎄고 쎈 게 남자들인데...!”는 말을 한다고 합니다.

이러니, 이혼율이 세계에서 제1위라는 오명을 쓰게 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나라는 이미 하루 평균 이혼 숫자가 500쌍이 넘어섰다는 통계가 나왔습니다.

(1년이면 17만쌍).


요즘 황혼 이혼이 늘어나다고 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닙니다. 10년 전보다 5배가 늘어났습니다.

사람들은 타락했기 때문에 나쁜 것은 빨리 받아들이는 속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효자불여악처(孝子不如惡妻)’란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이 무슨 뜻입니까? 아무리 자식이 효도를 한다 해도 악처가 더 낫다는 뜻이 아닙니까?

그래도 고마운 것은, “아이고, 이 영감, 꼴도 뵈기 싫으니 빨리 죽어버렸으면 좋겠소! 이 원수....!”라고 하면서도 밥지어주고 빨래해 주는 악처 아닌 악처가 훨씬 더 많다니 불행 중 다해입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여성이 악처라는 말을 들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옛 노랫가락에 이런 노래가 있지 않습니까?

[미워도 한 세상 고와도 한 세상 마음을 달래며 웃으며 살리라~~!!]

머시기 해도 한 세상, 거시기 해도 해도 한 세상인데 이왕 만나서 사는 남편에게 복음의 신앙에 입각해서 서로 대할 줄 안다면 결국 믿지 않는 얼마나 보람 있고 행복한 부부가 되겠습니까?

베드로 사도는 비록 남편 좀 잘못하고 핍박을 가해도 ‘숨은 속 사랑을 나타내어’ 남편을 복음으로 돌아오게 될 것에 기대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허다한 경우에 조금도 인내해 보지도 않고 말씀대로 살아보려는 노력도 하지 않고 순전히 인간적인 생각으로 서로의 약점만 물고 늘어지면서 살면서 이혼을 운운하며 사는 가정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디 결혼이 운명의 장난입니까?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적어도 결혼은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축복의 선물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성경의 관점으로 돌아가서 부부문제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성경은 단 하나의 이혼 사유를 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눈여겨보면 그것마저도 이혼 사유의 정당성을 부여하라는 뜻에서 주신 말씀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모세의 율법에서 이혼을 허락했던 이유는 “사람들의 완악함을 인하여” 허락되었을 뿐 “원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혼이라는 것이 가져다주는 폐단이 무엇인지를 너무나 잘 알고 계시기 때문에, 이혼을 원칙적인 면에서 불허하십니다.

부부의 이혼은 바로 가정의 파괴요 자녀의 미래를 해체하는 엄청난 결과를 낳게 됩니다. 어떻게 보면 이것은 사회적인 큰 악으로 치닫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한 가지 조심해야 할 것은 이 사회에서 이혼한 사람들을 결코 정죄해서는 안 됩니다.

심지어 어떤 목사님이 이혼했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정죄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그들을 더 사랑해 주고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가 될 때에만 이 사회는 건강해지는 것입니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22절).

따라서 합시다. “남편에게 복종하라!”

여성들만 따라서 합시다. “남편에게 복종하자!” 어디 기분 나쁘게 들립니까?

그런데 ‘복종’이 뭐죠? “당신이 죽으라면 죽겠습니다!”

우리 사회는 탈권위주의시대가 되면서 제일 싫어하는 용어가 ‘복종’이란 용어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럴 때일수록 ‘복종해야’합니다. 이것이 좋은 부부가 되는 비결이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첫걸음이라면 당연히 우리는 또한 말씀에 순종을 해야 합니다.

어떠한 경우라도 아내는 남편을 이기려고 하면 안 됩니다.
서열상 남편 아래 있어야 합니다. 남편을 세워주는 아내만이 건강한 가정을 이룰 수 있습니다.

어떤 여성은 남편이 10년을 밖으로 돌았지만, 그리고 어린 아이가 늘 아빠가 어머니와 싸우는 광경도 많이 보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아버지를 미워하려고 했지만 그래도 엄마는 "우리가 이렇게 행복하게 사는 것은 네 아빠께서 얼마나 열심히 일하시는지 몰라. 정말 아빠에게 고마운 생각을 가져야 해!"라고 했습니다.

아이가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는데 남편이 온전히 돌아와 아내와 하나 되었을 때 그 가정은 천국으로 변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있다고 해서 남편이 자기 아내에게 “여보, 여기 이 말씀이 있으니 당신은 무조건 복종하시오!”라고 강요할 수 있는 성질의 것으로 써먹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자칫하면 ‘악용’의 소지로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어디까지나 아내의 입장에서 ‘자발적인 복종’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께 하듯 하라”

예수 잘 믿는 여성들은 주님께 어떤 태도를 갖는다고 생각을 하십니까?

예수님의 사랑을 알기 때문에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믿을 뿐만 아니라, 그분께 기쁨으로 복종할 마음을 갖고 살아갈 것입니다.

바로 이런 맘으로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바로 이런 마음을 갖고 살았던 여성을 대표적으로 들었습니다. 믿음의 조상 가운데 하나인 ‘사라’였습니다.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복종한 것 같이....”(벧전3:6).

이 말은 남편을 왕으로 대하면 자기 자신은 저절로 왕비 대접을 받게 되는 곳으로 가게 된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이제 바울은 방향을 바꿔서 남편들에게 권면을 합니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25절).

그런데 어디 여기 서 있는 나부터가 그렇게 하고 있느냐고 물었을 때, 그저 할 말을 잃어버릴 뿐입니다.

아내를 위해서라면 어떤 것이라도 희생할 수 있는 사랑이 진짜 아내 사랑의 큰 보루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이해’와 ‘포용’과 ‘배려’를 동반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가정들이 치유되고 더 성숙한 자리로 나아갔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특별히 예수 믿는 가정은 하나님의 말씀을 먹으며 함께 자라가야 합니다. 예수 믿는 가정, 얼마든지 회복되고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주님의 십자가의 능력과 그 용서는 모든 가정을 넉넉히 구원하고도 남을 가장 고귀한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피는 여러분의 가정을 치료하는 특효약입니다. 그분 앞에 모든 죄를 아뢰고 다시 하나님께로 온전히 돌아서기만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예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훨씬 큰 기쁨과 보람과 행복으로 가득 차게 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 부부가 주님 안에서 새롭게 되기만 한다면 이 세 가지 기적이 일어납니다.

가정을 아름답게
교회를 아름답게
세상을 아름답게


'말씀하옵소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령의 은사  (0) 2006.06.04
좋은 대화  (0) 2006.05.28
가장 큰 효도  (0) 2006.05.14
무엇이 마음을 바꾸는가?  (0) 2006.04.23
예수는 살아나셨다!  (0) 2006.0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