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의 바른 신앙 Đức tin đúng theo chân lý
디도서 1장 5-16절
들어가는 말
우리가 세상에 와서 해야 할 일은 '선한 일', 즉 '선한 사업'에 열심을 다하는 삶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잘못된 정보, 즉 잘못된 선입관을 가지고 산다면 선한 일에 몰두하기는커녕 그 잘못된 정보를 진리처럼 믿기 때문에 잘못된 일에 종노릇 할 수밖에 없다.
잘못된 선입관은 잘못된 가치관을 낳고 잘못된 세계관을 갖게 만든다.
이렇게 된다면 거짓의 종이 되어 평생 불행하게 살다가 어리석은 인생으로 인생의 종착에 이르게 될 것이다.
지금 혹 여러분은 참된 진리ἀλήθεια(알레데이아)에 입각한 신앙 관념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가?
잘못된 선입관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잘못된 것인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것은 그 자체로서 불행한 일이다.
이런 거짓된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말씀의 빛'을 받아야 한다. 현재 기독교 안에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잘못된 전제 위에서 성경을 해석하여 오히려 하나님의 복되신 진리를 왜곡시키는 자들이 많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우리는 삼가 조심해야 한다.
예수님은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마태복음 7장 15절-고 하셨다.
이것은 바로 오늘 이 시대에도 계속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사이비 이단 집단에서 뿐만 아니고 기성교회 안에서 말이다.
이미 이단과 사이비종교로 낙인이 찍혀있는 단체보다도 더 무서운 악한 자들이 양의 탈을 쓴 이리들로 자리 잡고 있는 기성교회를 볼 수 있어야 한다.
바울 사도도, 베드로 사도도 그것을 강하게 경고하고 있다.
"이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 까닭이라 저희가 가만히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우리가 일시라도 복종치 아니하였으니 이는 복음의 진리로 너희 가운데 항상 있게 하려 함이라." -갈라디아서 2장 4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베드로후서 2장 8절-
걸러지지 아니한 이단들이 거짓 포장지로 예수의 이름을 팔아 헛둔 짓을 하며 기복신앙에 빠지게 하거나 신비주의로 흐르게 하거나 또는 잘못된 정치적 이념에 젖어들게 만들어 자기들의 종으로 부리고 있는 형국이 되었다.
1. 거짓에 속지마라
인간의 타락은 그 배후가 마귀이며 거짓 정보를 제공하여 분별력을 상실하게 만든다.
마귀는 처음부터 거짓말쟁이로 출현했다. 에덴에서 하와에게 다가왔던 뱀은 거짓 정보로 접근했다.
처음부터 대꾸를 하지 말았더라면 문제가 없었을 텐데 그 거짓 정보에 귀를 기울이고 말을 주고받다가 그 유혹에 빠지고 말았다.
죄에 타락한 인간은 거짓정보에 쉽게 빠져드는 경향이 있다.
바울은 그레데섬에 잠시 머문 적이 있다. 섬에도 교회가 세워졌다.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우상과 온갖 거짓된 죄악에 찌들었던 이 섬에도 하나님을 찬송하며 주 예수의 이름이 높임을 받게 된 것이다.
바울은 자신이 그곳에 오래 머물 수 없어서 디도를 목회자로 남겨두었다.
바울은 디도에게 목회서신을 써서 보냈다.
바울 사도는 아직도 거짓된 정보에 갇혀 사는 그레데섬의 교회 성도들을 그대로 두지 말라고 말한다.
"거슬러 말하는 자들을 책망하라." -디도서 1장 9절-
그들은 지금까지 윤리의식이 잘못된 사회에 젖어 살면서 살아왔던 잘못된 삶과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생활 모습이 바뀌지 않고 교회 안에서까지 나타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들의 삶 속에 청산되지 못한 악습이 여전히 남아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불순종하고 헛된 말을 하며 속이는 자가 많은 중 할례파 가운데 특히 그러하니 그들의 입을 막을 것이라
더러운 이득을 취하려고 마땅하지 아니한 것을 가르쳐 가정들을 온통 무너뜨리는도다." -디도서 1장 10-11절-
거짓된 정보는 오늘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범죄 한 이후로 계속되어 왔다.
우리는 속지 말아야 할 책임도 있다.
오늘의 한국교회의 심각성이 역기에 있다. 성도들을 바르게 가르쳐야 할 목사들이 가짜 정보를 퍼다가 성도들에게 그대로 전하는 목사들까지 생겨났다.
그러면서도 자기가 옳다고 말한다.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군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디모데후서 2장 15절-
이 말씀을 역행하면서도 자기가 옳다고 믿고 거짓된 확신에 차 있는 자들이 수두룩하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그렇다면 그를 목자로 여기고 따르는 성도들은 어떻게 될까!
영적으로 볼 때 이리떼를 만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요즘 한국교회를 보면 지성인으로서의 크리스천이 아니라 광신도처럼 살아가는 크리스천들이 생겨났다.
교회를 정치적 선동장으로 만들어버린 정치 깡패 목사들까지 출현했다.
정착 전해야 할 복음은 안 전하고 정치선동으로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현 정부를 악한 정권, 또는 사단의 정권으로 보게 만들어 광화문 집회까지 끌고 나간 자들이 있다.
그 배후에는 오랫동안 정치와 결탁해 왔던 돈 많은 장로들이 있고 대형교회들이 있다.
이런 것들을 직시하지 못하고 거짓된 목사나 장로들에게 이용을 당하는 교인들이 많아졌다.
이런 경우에 개인이 망가지고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가 파탄 나는 양상으로 가게 되는 것이다.
거짓된 정보는 잘못된 이념을 만들어 내고 그것이 각 개인에게 잘못된 신념을 만들어 주기 때문에 사회적 큰 폐단을 낳게 만든다.
이런 경우 역시 그리스도를 욕되게 하는 자들로 전락되고 만다.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히브리서 6장 4-6절-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 히브리서 10장 29절-
그렇다. 요즘 사회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일을 보면 거짓에 선동질을 당한 무리들의 모습이 전도의 문을 닫게 만들어버리고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하게 욕을 보이는 꼴'이 되어버렸다.
뿐만 아니라, '예수의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만들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런 거짓된 자들에게 잡혀 죽었다. 예수 당시에도 거짓된 대제사장들의 선동에 의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요한복음 19장 6절- 하며 얼마나 크게 외쳤던가!
거짓에 사로잡히면 오늘 은혜받았다고 날뛰던 자들이 내일 사단의 수종자가 될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삼가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진리를 왜곡시키는 지도자를 만났을 때 자칫하면 윤리적으로, 신앙적으로 잘못되기 쉽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거짓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잘못된 줄도 모르고 코 뚫린 망아지마냥 쉽게 끌려다니게 되는 것이다.
2. 참과 거짓을 분별하라
잘못된 정보에 속아서 그것을 마음에 받아들이고 나면 그 이후는 잘못된 정보에 생각마저도 고착이 되어버린다.
잘못된 선입은 결국 잘못된 고정관념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아무리 바른 정보를 들고 나와서 얘기를 해 줘도 그것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이미 그 사람의 뇌에서 거짓이 왕 노릇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된 경우에 이것에서 벗어나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술, 담배 또는 마약에 쪄들은 사람들이 이것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은 것 이상으로 거짓된 정보에 빠진 자들은 거기에서 헤어나기란 쉽지가 않다.
그 배후에는 마귀가 있다. 마귀는 그들을 쉽게 놔주질 않는다.
이미 그들은 그것을 즐기고 있으며 거기에 빠져서 종노릇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잘못된 것인지조차 모르고 우둔하게 되어버린다.
그러나 바꿔야만 한다. 거기서 나와야만 한다. 거짓된 것에 휘말려 다니지 말고 거기서 신속히 나와야만 한다.
다른 방법이 없다. 다시 예수 십자가를 바라봐야 한다.
그리고 바른 진리의 지식을 배워야 한다. 한 마디로 머리를 붙잡는 신앙이 되어야 한다.
지성을 무시하고 감정에 사로잡히면 얼마든지 마귀에게 노략질을 당할 수가 있다.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받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므로 자라느니라." 골로새서 2장 19절-
우리가 진리의 바른 지식에서 벗어나면 결국 분별력을 상실하게 되고 마귀의 미혹에 쉽게 빠지게 된다.
그런 까닭에 우리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야만 한다.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베드로후서 3:18-
우리는 늘 그리스도 예수의 은혜를 풍성히 누리기 위해서 기도와 말씀으로 깨어있어야 하고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가운데서 계속해서 자라가야 하고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렇지 아니하면 분별력을 상실하게 되어 세속에 물들게 되고 엉뚱한 데 관심을 갖게 되어 열매 없는 신앙으로 전락이 된다.
심지어는 그리스도의 영광을 가리게 되고 세상으로부터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더 하신다.
이것은 예수 보혈의 피의 능력으로 그렇게 된 것이며 성령의 새롭게 하심의 결과이다.
얼마나 다행이며 감사한 일인가?
"새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골로새서 3장 10절-
얼마나 감사한가!
그러데 어느 날 이런 진리의 아름다운 신앙에서 벗어나서 거짓 선생들의 가르침의 수에 놀아나게 되면 형편없는 자리로 내려가게 된다.
그런데 요즘 우리들을 보면 어떠한가?
한국의 크리스천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혹시 자기 개인의 욕심이나 자기 집단의 욕심에 치우쳐서 오히려 세상으로부터 이주적인 사람들, 이기적인 집단이라는 말을 듣고 있지는 않는지!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우리는 괴로운 심정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회개해야 한다.
왜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와 그 희생을 헛된 데로 돌리려 하는가!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르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디도서 2장 14절-
그런데 이와는 반대로 가고 있는 한국교회의 모습으로 비쳐지고 있지는 않는지!
우리는 정말 분별력을 가져야 한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로마서 12장 3절-
우리는 변화받은 새사람으로서의 인생의 값진 것을 추구해야 한다. 부동산 값 오르는 것에 맛들여서 같이 휩쓸려 사는 정도의 인격과 신앙이라면 문제가 심각한 것이다.
교회가 교회다운 모습을 보여주지도 못하면서 현 정부를 내리치고 체제를 전복시키려는 것처럼 덤벼드는 것을 보면서 맘이 너무나 아팠다.
생각보다 많은 교회들, 특히 목사들이 현정권을 반대하고 도전하는 일을 하고 있는 모습에 심각성을 느낀다.
우리는 세상에게 빛과 사랑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교회와 교인들에게서 향기가 나야 한다.
이것이 무엇으로 가능한가! 모든 사람과 더불어 평화하고자 할 때에 가능하다. 세상의 불의에 가담하지 않고 예수의 마음을 본받고 그 모범에 따를 때 가능하다.
세상이 우리를 핍박을 해도 같이 싸우려 하거나 욕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조용히 기도해야 한다.
그런데 현재의 한국교회의 모습은 어떠한가!
내가 하는 말에 거리낌이 된다면 신속히 그런 자리에서 떠나야 한다.
왜 그렇다고 생각하는가?
"그들이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는 자니 가증한 자요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 -디도서 1장 16절-
말로는 신학박사처럼 떠들며 능력이 많은 목사처럼 말을 하고 카리스마가 넘쳐나지만 행위로는 하나님이 없는 자보다 더한 목사들이 있다.
입술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을 섞어가며 그럴싸한 논리를 펴고 사실도 아닌 것을 팩트인 것마냥 주장하며 속이는 자들이 많다는 얘기다.
지금 한국교회는 위기에 처해있다. 혼동하지 말자. 따라서 정신을 차려야 한다.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에서 나느니라." -마태복음 6장 37절-
우리는 속지 말아야 한다. 분별력을 가져야 한다.
속지 않으려면 무엇이 참인지를 알아야 한다. 바른 진리를 가르치는 선생을 만나야 한다. 성경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거짓된 정보의 홍수시대를 살고 있다. "나는 안 넘어간다."라고 장담만 하지 말고 무엇이 옳고 그런지를 알아야 한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어리석은 여자를 유인하는 자들이 있으니 그 여자는 죄를 중히 지고 여러 가지 욕심에 끌린 바 되어. 항상 배우나 마침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느니라." -디모데후서 3장 5,6절-
한번 길을 잘못 들면 나오고 싶어도 못 나오는 자들이 무지기 수이다.
단호해야 한다. 아닌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돌아서라"라고 가르친다.
3. 진리에 가운데 행하라
진리는 항상 진리 그 자체로서 힘을 가지고 있다. 거짓은 죄이며 어두움이다. 진실은 선이며 빛이다.
거짓이 왕 노릇하고 있는 인간의 뇌 속에 진리의 빛이 들어온다면 자연적으로 거짓은 저절로 물러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될까 봐 인간의 뇌를 사로잡고 있는 고정관념은 진리를 강하게 거부한다.
그들이 마음에 더러운 욕심이 끼여 있어서 진리를 외면하게 만든다. 그리고 계속 그 욕심에 끌려다니며 살게 한다.
그런 세상에 예수가 오셨다.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함이라." -요한복음 3장 19절-
그러나 빛이 있을 때 빛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의 죄를 들춰내는 진리는 빛이다.
그 빛이 우리 맘에 비치었을 때 우리는 예수께로 돌아왔다.
"나는 세상에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요한복음 8장 12절-
예수는 빛이시다. 그리고 진리이시다.
만일 우리가 그분을 진실하게 따라가기만 하면 우리는 거짓 것에 치우치거나 빠져들지 않는다.
그러나 진리를 떠나서 이 세상 거짓된 정보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면 거기서부터 마귀는 올가미를 씌우서 끌고 가는 것이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나의 참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한복음 8장 31,32절-
그렇다. 진리만이 인간을 자유하게 한다. 진리만이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준다.
이제부터 하나님의 진리가 아닌 것에 관심을 갖거나 거기에 마음을 빼앗겨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하늘에 속하 하늘나라의 시민이 되었다. 그렇다면 하늘나라의 자치관을 가지고 세상을 볼 줄 알아야 하며 또 시시한 것들에 시간, 돈 그리고 인생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아야 한다.
"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하는 것이니" -골로새서 2장 21절-
우리는 진리의 산앙에 터 위에 자신을 굳게 세워야 한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것을 알고 이미 있는 진리에 서 있으나 내가 항상 너희에게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 -베드로후서 1장 12절-
우리는 처음 예수 믿을 때 받은 복음 진리에서 이탈하지 말아야 한다.
여기에서 흔들린다면 다시 율법주의로 돌아가거나 세속주의에 빠지게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처음 믿을 때의 십자가 복음의 신앙을 굳게 견고히 붙잡아야 한다.
그래서 늘 우리 자신이 복음의 바른 신앙의 터 위에 서 있는지를 확인해야만 한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를 향해서 야단을 치듯이 대했다.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육체로 마치겠느냐?" -갈라디아서 3장 1-3절-
그들은 복음의 바른 신앙에서 흔들렸다.
다행히도 아주 넘어지지는 않았다.
우리가 믿는 복음의 신앙이란 '십자가의 진리' 그 자체이다. 여기에 다른 것이 첨가되거나 추가될 수 없다.
순도 100% 순금이다.
그런데 이상한 첨가물을 넣어서 우리가 간직한 보화를 송두리째 빼앗아가려는 악한 자들이 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복음의 아름다운 신앙에 굳게 서서 이 믿음을 지켜가야만 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갈라디아서 5장 1절-
우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십자가의 진리'민 붙잡고 나가야 한다.
"십자가 단단히 붙잡고 날마다 이기며 나가세!" -찬송가 270장 4절-
이것이 우리의 아름다운 신앙이다.
바로 이 아름다운 신앙 터 위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그분의 가르침의 모범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우리 크리스천들의 삶의 모습이 되어야 한다.
바로 이것이 행복이며 우리의 자랑이다.
더 이상 뭐가 더 있겠는가!
"나 바랄 것이 무언가 우리 주 예수 나 위해 죽임 당하심 믿고 옵니다." - 찬송 273장 5절-
이 진리의 신앙 위에 굳게 서길 바란다.
오늘날에 있어서도 스가랴의 외침은 우리의 것이 되어야 한다.
"오직 너희는 진리와 화평을 사랑할지니라."
나가는 말
우리는 진리의 사람들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람들이다. 그러니 만큼 복음 진리를 옳게 분별하여 가르쳐야 하고 또 가르침 받는 자들 역시 바른 스승을 두어야 한다.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디모데전서 6장 11,12절-
우리는 주님의 진리를 바르게 사수하기 위해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한다.
어떤 물리적인 힘을 동원하거나 완력 다툼을 하듯이 해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 하나님의 교회들이 어떻게 해 왔는지를 돌아보며 크게 뉘우쳐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거짓된 자들의 가르침에 따라가지 말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이 진리이며 바른 신앙의 삶인지를 이해해야만 한다. '거짓이 없는 믿음'을 따라서 순종해야 한다.
잘못된 신앙, 또는 잘못된 목사들을 따라가지 말아야 한다.
그런 자들은 거짓말을 일삼거나 이중적인 태도로 인생을 일관하는 자들이다.
예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대상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었다.
"겉으로는 사람들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마태복음 23장 28절-
현재 한국교회에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보다 한수 더한 자들이 많다.
우리가 두 눈으로 지켜봐서 알지만 국가의 혼란과 위기에 앞장서서 부축이는 자들이 누군지를 보았다.
우리는 분별력을 가져야 한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모르면 불의의 종이 되어 살아갈 수밖에 없다.
우리는 진리가 무엇인지를 알고 그 진리 위에 굳게 서야 한다.
그리고 그 진리를 따라 말도 하고 행동도 해야 한다. 그것이 바른 신앙과 바른 삶이다.
즉 우리는 이제 거룩한 길, 구별된 삶을 통해서 열매 맺는 신앙으로 이어져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모셨으면 모든 것을 그리스도 중심으로 행하여야 한다.
하나님의 성령께서는 불의와 불법 가운데서 일하지 않으신다.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의 진리를 따라 행할 때 성령이 역사하시고 그 가운데서 성령의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것이다.
따라서 진리의 바른 신앙만이 우리를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게 한다.
그렇다. "우리는 진리를 거슬러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할 뿐이니" -고린도후서 13장 8절-
진리 안에서 행하자.
요한사도 역시 가이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거 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도다." -요한삼서 1장 3,4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