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콩 하류 까마우, 박리에 우, 속짱, 하우장 그리고 껀터에 다녀오다
Tôi đã đến Cà Mau, Bạc Liêu, Sóc Trăng, Hậu Giang và Cần Thơ từ Việt Nam.
2030년까지 베트남 정부는 속짱 항만 인프라 개발에 50.5조 동(약 22억 달러)을 투자할 계획을 가지고 있단다. 나는 10년 전부터 이 지역을 꼭 가봐야지 하면서도 못 가보았다.
국도 60호선과 연결되어 있어서 띠엔장(Tien Giang), 벤째(Ben Tre), 짜빈(Tra Vinh) 지역 육로 운송이 용이하며 꽌로-프엉히엡(Quan Lo-Phung Hiep) 도로를 통해 하우장(Hau Giang),박리에우(Bac Lieu), 까마우(Ca Mau)성으로 화물을 운송할 수 있다. 캄보디아와도 인접해 있어서 많은 물류 운송에 큰 혜택이 전망된다.
나는 큰 맘을 먹고 이번엔 꼭 가기로 했다. 출발!!!
여행은 즐거움과 신지식을 가져다주는 인생의 옹달샘이다. 그래서 나는 종종 여행을 즐긴다.
어찌 보면 나 홀로 여행일수록 더 좋다. 내가 원하는 곳에 갈 수 있는 것뿐 아니라 아무것도 구애를 받지 않고 더 많이 생각하고 구석구석을 살펴볼 수 기회를 가질 수 있어서이다.
나는 베트남 생활 10년에 아직도 안 가본 곳이 많이 있다.
유명한 곳 대부분은 거의 기본 것 같다.
하노이, 호찌민, 하롱베이, 사파, 다낭, 나짱, 푸꾸옥, 껀터, 닌빈, 무이네, 호이안과 후에 등을 다녀왔다. 그중에서 하롱베이, 닌빈 그리고 다낭은 각각 약 스무 번씩은 다녀온 것 같다.
일부러 간 게 안고 한국의 손님들 모시고 안내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사실 베트남 전역을 나만큼 많이 다녀본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위에 언급한 곳 말고도 학교 방문차 가정 방문 차 수없이 많은 지역을 다녀왔다.
남부의 동나이, 빈증, 붕따우와 남서부의 동탑, 하우장, 티엔장, 안지앙, 빈쩨 그리고 중남부의 다클락과 잘라이 중북부의 동허이, 응예안, 남딘, 탄화 그리고 북동쪽의 흥니옌과 하이퐁, 북부의 박닌, 박장, 타이응옌, 엔바위, 낭선, 썬라와 라오까이 그리고 북서부의 티엔꽝, 다엔비엔푸, 선라, 라오까이 등 많은 곳을 가보았다.
꼭 가보고 싶은 곳 중에서 아직까지 못 가본 지역이 있다. 그곳이 어디일까? 메콩강 남쪽의 길게 뻗어내려가는 그곳, 바로 속짱과 박리에우 그리고 까마우지역이다. 예로부터 피부색이 캄보디아인을 많이 닮았다는 이 지역의 문화를 답사하고 싶었다. 어떻게 보면 이들은 미개인이 아닌 깨어있는 베트남 남부의 선각자들이기도 하다.
사실 껀터는 수없이 많이 갈 일이 있었지만 이 지역은 특별히 큰 맘을 먹지않으면 쉽게 가지질 않은 곳이다.
호찌민에 살았을 때 속짱과 까마우 출신들을 만나본 적이 있었다.
Quyen이라는 여학생이었는데 그 학생의 얼굴은 상당히 거무스름했다.
그 이후로 이 지역인들의 이미지가 좀 까맣고 가난하고 소박하다는 것만 남아있다.
나는 이번 기회에 꼭 이 지역을 방문하고 그들을 접촉하고 그들의 개성과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가 무엇인가를 확인해 보고 싶었다.
지금은 어느 정도 교통이 좋아져서 껀터와 호찌민이 가까워진 느낌이겠지만 예전에는 그 지역을 방문하는 것이 쉽지 않았으리라는 생각이다. 까마우까지는 360 킬로미터의 거리여서 아주 외지고 가난해서 강고기를 잡아서 먹고 그 유역의 농산물과 바나나 등의 과일들로 의식주를 해결하며 살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이 아니라 상당히 많이 발전했다는 말을 듣고 있다.
나는 이번에 하우장에 가서 고등학생들과 그 학부모들을 만나야 한다. 그래서 껀터와 하우장까지 포함시켜서 이 여행기를 써 내려갈 예정이다. 하우장에 가기 전에 껀터로 가서 까마우로 가는 버스를 탈 예정이다.
나는 현재 하노이에 살고 있다. 그래서 하노이에서 껀터로 가는 비엣젯항공에 올랐다.
코로나 사태 이후로 외국 손님이 뚝 끊긴 상태이지만 국내 손님 서서히 증가되고 있다. 예전 같으면 까마우 경우도 연간 200만 명 이상의 손님이 다녀 갈 정도로 시대가 바뀌었었는데 말이다.
앞좌석을 예약했었는데 다섯 번째 줄까지는 손님이 앉지 않고 나 혼자만 앉았다. 모두 적은 비용을 내고 표를 구입한 것으로 보인다.
하노이에서 왕복 10만 원이다. 가는 시간이 약 1시간 40분이 걸릴 거란다.
비엣젯 저가항공이다 보니 역시 손님들이 질서 없이 서대는 장면과 시끄럽게 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도 나는 이런 모습이 더 좋다. 오늘따라 체크 인 시간에 오래 대기를 했다. 탑승시간이 급하다고 떼거지로 몰려와서 양보해 달라하니 어떻게 하나. 양보해야지!
탑승 표를 받아 검색대를 통과하고 대기실로 들어가니 오후 1시다. 쌀국수를 시키니 12만 동이다. 한화 6천 원이다. 하노이에서 3만 동짜리가 여기서는 4배가 비싸다. 비엣젯은 출발시간을 잘 지키지 않기로 유명하다. 어쩔 땐 두세 시간을 늦게 출발하는 것도 보통이다. 그런데 지금은 떠는 비행기가 별로 많지 않아서 출발 시간을 잘 지켰다.
아무튼 껀터에 안전하게 도착했다.
그랍 오토바이를 불렀는데 5만 동정도 나왔다. 30분 탔는데 우리 돈 3천 원(6만 동)을 줬다.
호텔 주소가 엉터리라서 근처에서 헤매고 전화해서 위치를 물어 찾았다.
Nhu에게 5시에 만나자고 했는데 5시 15분이 넘었다.
이 여자 아가씨는 한국의 지인 아들과 결혼할 예정이다. 지금 내가 나랑 친한 한국어센터 원장에게서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하는 중이다.
약간 시간이 지연되었지만 쉽게 마날 수 있었다.
신랑도 착하지만 시아버지 될 분은 더 착하다. Nam Bo식당에 가서 도란도란 얘기하며 격려를 해 주었다.
내가 묵을 호텔에 와서 여장을 푸니 한국어센터 원장에게 전화가 왔다.
호텔까지 찾아왔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거의 3시간 동안 얘길 나눴다.
약 8년 베트남에 와서 살면서 이래저래 고생도 많이 했는데 지금 결혼해서 돌이 가까워지는 애가 있어서 안정을 찾았다.
얘기를 마치고 헤어졌는데 그는 나에게 "오늘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라는 감사 메시지를 보내왔다.
피곤했다. 곧장 잠을 청하니 깊은 잠을 자고 나니 5시 30분이다. 누운 채로 기도하니 6시 40분었다.
호텔 음식은 보통 수준에서 먹을만하게 나왔다.
프런트에 가서 오늘 속짱을 가려고 한다고 했던 친절하게 안내해 주며 9시 30분에 호텔까지 픽업하러 온다는 것이다.
픽업하는 차는 라를 태우고 컨터 종합 정류장으로 갔다. 발매를 하니 12만 동(6000원)이 멌다.
대형버스가 아니고 리무진 승합차였다.
1. 까마우에 가다
베트남 실정도 날로 좋이 진다는 느끼이 들었다.
내가 탄 차는 속창과 박리에 우를 거쳐 까마우에 도착했다. 오전 10시에 탔는데 오후 1시 30분에 도착했다.
나는 베트남의 땅끝마을에 온 기분이었다.
오토바이(쎄옴) 기사들이 서로 태우려고 달려드니까 조금 걸어 나와서 편하게 사람의 것을 타고 까마오 중심가까지 갔다.
전통 큰 시장을 먼저 한 바퀴 돌고 나서 까마우 QUỐC TẾ Hotel 호텔로 갔다.
별 세 개 호텔 아라고 해서 갔더니 생각보다 별로였다.
여장을 풀고 나니 두시 반이다.
잠깐이면 해가 지니까 구경부터 하고 싶었다.
까마오 사람들의 인간성은 모르지만 순박하고 친절해 보였다.
땅끝이라서 못 살고 가난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런대로 경제가 잘 돌아가는 모습으로 보여졌다.
도심에는 베트남의 다른 성과 거반 다르지 않게 잘 돌아가고 있었다.
까마오는 흙이 까맣다는 뜻이란다. 나는 사람들이 검은가 하고 봤더니 약간 캄보디아 계통의 피부색들이 많아 보였고 미녀들도 종종 보였다.
역시 강이 흘러가고 있는 곳에 도시가 자리를 잡고 있다.
시장에는 꽃게들과 바닷 생선과 강물 고기가 많이 나오고 있었다. 여기서 생산되는 물고기들이 여러 나라로 수출까지 되고 있단다.
그래서 시장은 여러 가지 종류의 민물고기들이 장사진을 이루었고 또한 요즘 남부지방의 여름과일 시즌이라 파인애플, 망고스틱, 두리안 그리고 자푸릇 등이 출하되고 있는 모습이었다.
나는 이 재래시장을 두 바퀴를 돌았다. 그리고 마른 새우를 조금 샀다.
물가가 싸니까 이런 곳에 살면 적은 수입으로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야간에 호텔 주변을 걸어봤는데 클럽 같은 곳, 해산물 음식점 그리고 맥주와 함께 저녁식사하는 식당이 잘 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지금은 소수 민족이 되었지만 까마오문화는 컴보디아 크메르족의 문화 짙게 묻어나 여러 곳에 불교사원이 있고 그에 따른 축제와 예술 공연이 있다.
관광명소들 중에는 참파 양식의 건축물들이 남아 있다.
시내 중심가에 Monivongsa Bopharam Temple이 있는데 나는 가보지는 않았다.
에어컨이 안 좋아서 시끄럽고 시원하지도 않고 짜증이 났다.
그래서 다 끄고 창문을 열어놓고 잤더니 오히려 더 시원하고 편한 잠을 잘 수가 있었다.
그렇지만 2만 원 주고 아침식사까지 준다니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아침은 호텔에서 먹었다. 그냥 채소 위주로 먹었다. 어설퍼서 쌀국수까지 먹으니 배가 불렀다.
식사 후에 체크아웃을 했다. 예약한 게 상당한 손해였다.
예약을 안 했더라면 훨씬 싸게 호텔방을 구했을 텐데
나는 쎄옴으로 버스정류장으로 이동했다. 박리에우(Bac Lieu)로 가기 위해서이다. 7만 동 주고 누워서 가는 버스를 탔다.
2. 박리에우에 가다
두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박리에우에서 내려서 우선 머물 호텔을 찾기로 했다.
나는 중심가에 있는 사이공호텔에 머물려고 했는데 소통이 잘 안 돼서 그런데 캔슬
근처의 다른 호텔을 찾으니 깨끗하고 분위기도 좋은 Tran Vinh Hotel이었다.
우선 닭쌀국수로 요기를 했다.
그리고 여기서도 말린 새우를 조금 샀다. 맛있으나 비싸다
여기에 머물 시간이 길지 않으니 관광지를 돌자고 맘을 먹었다. 쎄옴기사 4곳을 지정해 주었더니 30만 동을 부른다.
그러나 절반 값에 가자고 결판을 냈다. 한국 돈으로 7500원이다.
시간의 여유 때문에 바다 구경을 못했다. 하지만 바다로 곡장 이어지는 포구에서 사진을 찍었다.
바닷가를 한번 보고돌아오고 싶었다. 10Km를 달려서 바닷가로 가는데 거기에 박리에 우에서 가장 큰 절이 있었다.
Ba Nam Hai라는 절이다.
여보살들로 단장된 절이다. 아무튼 이런 절이 나름대로 특징이 있었다. 사람들은 이런 데서 공을 드리고 위안을 얻고 싶어 하겠지!
나는 수십 개의 여자 보살을 보며 한 바퀴 휙 돌고 돌아오는 길에 사진을 찍었다.
그다음에는 박리에우광장으로 갔다. 여기는 가장 인상 깊은 공예의 기술이 담긴 공예품의 전당이었다.
오토바이 기사는 다음 장소로 Công tử Bạc Liêu 전시관에 데려다주었다. Trần Trinh Trạch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Trần Trinh Huy (1900 – 1974)는 '검은 왕자' 별명까지 얻었다. 이 사람은 부유한 가정의 아들로 사이공에 있는 프랑스학교에 까지 다닐 수 있었다.
그는 프랑스 사람들의 농사기법을 배워 '코칭 차이나 쌀의 왕자'라고 불리기도 했단다.
그는 돈을 물쓰듯하고 다닌 플레이보이였다고 알려진다. '검은 왕자' 휘 공자는 논에 갈 때 비싼 옷에 자동차로 관광하듯 다녔으며 노를 젓는 배가 대부분이던 시절 서쪽 운하에서 서핑하기 위해 카누를 구입했었다.
까마오에서 좀 더 머물면 더 많은 사람들과의 나눔과 접촉이 있을 수 있는데 이것이 아쉽다.
저녁에 고리대금업자 주변 도심을 걷는데 갑자기 나를 쳐다보며 정겨운 미소를 던져주는 아줌마가 있었다.
사이공에서 오랫동안 살다가 고향인 이곳으로 돌아왔다고 얘기를 한다. 짧은 영어지만 제법 또박또박 얘기를 잘했다.
직업이 무엇이냐고 했더니 돈놀이를 한다고 했다. 급히 돈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열흘도, 한 달도 꾸어주고 이자를 받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리대금 업자냐고 했더니 그건 아니란다. 커피값은 그 아줌마가 지불했다.
아무튼 그 아줌마가 데리고 온 아이랑 놀아주었더니 못 가게 한다.
도망치듯 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3. 속짱을 가다
아침이 되니 호텔식으로 때우고 속짱으로 이동했다.
쎄옴이 택시보다 절반이 싸니까 약간의 위험부담을 감수하고 쎄옴을 주로 탄다.
교통비 아껴서 뭐하나 하겠지만 나는 아껴야 한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생각도 있고 돈도 못 버는 사람이 맛있는 것 사 먹고 좋은 차 타고 그렇게 할 수 없기 때문이고 또한 이걸 이끼면 다른 좋은 일에 보탬이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속짱은 속창알이가 생각나는 발음이다. 버스에 올랐다. 박리우에서 2시간 정도 걸렸다. 휴게실에서 15분 정도 정차했기 때문에 더 오래 걸리는 느낌이었다.
속짱에서는 하룻밤을 머물 수가 없다. 오늘 오후에 하우장성으로 이동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속짱의 관광지라는 곳은 절에서 절로 이어진다.
그만큼 불교문화 성행한 곳이다.
거리에 있는 로터리마다 연꽃으로 꾸며져 있다.
이곳은 현재의 베트남이 있기 오래전부터 캄보디아 크롬 문화가 배경을 이루고 있었다. 그래서 어디
그러니까 그 문화는 속창을 거쳐 박리에우와 까마우까지 크게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그래서인지 피부가 좀 더 검은 편이고 왜소하다고나 할까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다.
산업사회 이전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강줄기를 따라 이동하며 생계를 잇는 일에 매우 익숙해져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는 호찌민과 껀터의 영향을 받아 남부 어느 성이나 다를 바 없이 잘 돌아가는 분위기로 보여졌다.
나는 버스에서 내리자미자 나이 많은 아저씨의 쎄옴을 타고 관광지로 이동을 했다.
맨 처음 간 곳이 Kh'Leang Temple이었다. 이 절이 속창에서 제일 유명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들어가 보니 와! 캄보디아 건축물 양식의 건물 이 한눈에 쏙 들어왔다.
나는 원래 절에는 관심이 없지만 그래도 문명 속을 들여다볼 마음에 찾았다.
여기저기 리모델링하고 있었다. 부처상 같은 것도 눈에 안 들어왔다.
다만 학교가 보였다. 왜 절 안에 학교가 있지!
알고 보니 옛 캄보디아 문명을 잇기 위해 크롬의 문자와 역사와 학문 등을 가르치는 전당이었다.
그쪽으로 가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어떤 아기씨가 미소를 지으며 매은 친절하게 다가왔다.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묻자 한국사람이라고 하자 금방 친하게 다가왔다.
그녀는 이 지방 연합단체서 일한다고 했다.
다음 기회에 방문할 때 이 지역 안내를 부탁했더니 선뜻 긍정해주었다.
내가 가지고 있었던 부채를 하나 꺼내 주었더니 미안해하면서 무엇인가를 답례를 주고 싶어서 자기 가방을 뒤졌다.
나는 그냥 기념사진이나 찍자고 했다. 사진을 찍고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내가 가장 보람 삼아하는 일이 바로 현지 사람을 아는 것이다.
다른 절을 계속 다닐 필요는 없는 것 같았다. 시간도 없다.
오늘 나는 Hau Giang성에 도착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쎄옴 아저씨에게 전통 재래시장을 가보자고 했다.
속짱의 물건이 박리에우보다 더 싼 느낌이었다. 메콩지역에서 생산되는 물건들이 비슷해서 다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먹고 싶어도 비싸서 못 먹고 참아왔던 두리안을 8만 동 주고 샀다.
혼자 먹기에는 충분할 것 같았다.
이걸 든 속짱시 주변의 외곽지 풍경을 보며 한 바퀴를 돌았다.
4. 하우장을 가다
하우장 가기 위해 하우장 길목까지 가는 리무진 버스를 탔다. 20만 동을 달라고 했다. 왜 이렇게 비싸냐고 했더니 고급 침대차라 그런다고 대답했다.
다투기 싫어서 그냥 줬다.
한 시간 가서 골목에서 내렸다.
시간의 여유가 있어서 조금 걷다 보니 사람이 바글바글한 스파가 있었다. 가만히 들여다보나 들어오란다.
날씨도 덥고 하니까 약간 쉬고 싶어서 들아갔다.
종업원들과 손님들이 뒤엉켜 있는 시골스런 스파(Spa)이다.
나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 손톱 봐 발톱을 깎아달라고 부탁했다.
재미있게 농담도 하며 이런저런 얘길 하다 보니 한 시간이 흘렀다.
버스로 가야 할 것을 쎄옴에 부탁하니 하우장까지 30만 동을 달라고 했다.
나는 절반을 주고 가자고 했다. 알고 보니 백리가 넘는 길이었다.
오토바이에 백리 이상 의지해서 달리니 엉덩이가 아프고 나중에는 허리까지 아플 정도였다.
그러나 재미있었다. 그 신선한 농촌 바람을 맞아가면 시원하게 달리는 기분을 그 무엇에 비하랴!
나는 길거리에 나온 과일들을 구경하며 달려갔다.
하우장은 도시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 전형적인 농도의 성으로 보여졌다. 그래서 벼가 익어 황금벌판을 이룬다.
하우장까지 거의 한 사간을 달리니 목적지 Van Quang Hotel까지 도착했다.
Hau Giang은 두 번째 방문이다. 정감이 있는 곳이다.
나랑 7년을 같이 한 따이 사장이 그 아내와 함께 먼저 도착해 있었다. 호텔은 아직 공사 중이라 먼지가 많아서 커피숍으로 가서 좀 쉬었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와서 짐을 풀고 저녁에 하우장성 고등학교 교장선생님과 학부모 몇몇 분과 학생들을 만나서 식사를 하기로 되어 있었다.
베트남의 파티는 처음에는 가볍게 몇 가지 음식이 나온다. 그렇지만 먹다 보면 계속 나오는 음식들이 많아서 매번 배가 너무 불러서 곤욕을 치른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다행히도 모든 분들이 나를 이해해 주니까 나는 음료수로 건배를 하며 식사를 같이 하고 교제를 했다.
학부모 한 분은 지난번 두 차례 만난 적이 있어서인지 굉장히 정감 있게 대해주었다. 나는 늘 고마울 뿐이다. 어디 가나ㅏ사랑을 받고 산다는 것이다.
시간이 두 시간쯤 지나니까 한 사람 두 사람 일어서기 시작한다.
나도 피곤한데 잘 되었다 싶었다. 호텔에 돌아와 잠을 청했다.
아침에는 혼자 예배를 드렸다. 혼자서 드린 예배라서 약식이 될 가능성이 많다. 그러나 오늘은 맘먹고 정식 예배 순서를 따라 예배를 드렸다.
묵상기도를 한 후에 시편 낭독도 하며 찬송, 사도신경 그리고 다시 찬송, 교독문 낭독, 다시 찬송을 부르고 룻기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경청하며 그리스도의 오심에 대한 대망을 꿈꾸며 '기업 무를 자 보아스' 그리고 '현숙한 여인 룻' 그리고 '정숙한 어머니 라오미'를 생각하며 은혜를 받았다.
결심과 더불어 찬송을 부르고 또 주기도와 더불어 축도로 예배를 마쳤다.
전화벨이 울렸다. 아침은 금식이다.
벌써 학부모 학생 그리고 다른 고등학교 교장선생님이 오셨단다. 나는 세미실로 올라갔다.
내 자리는 원장 자리니까 교장선생님과 맞대할 수가 있었다.
외국에서의 나의 위치는 항상 총장, 교장선생님의 옆자리이다. 그게 의미가 있다면 내가 외국에서 그만큼 사랑을 받고 산다는 얘기이다. 항상 하나님께 감사한다.
나는 학생들을 대할 때마다 꿈꾸는 젊은이가 되라는 말을 한다. 아리랑 한 곡에 하모니카로 고향의 봄 노래를 곁들려서 불러주니까 다 좋아한다.
이들 중에 한국에 유학을 가기 위해서 한국어를 미리 준비한 학생도 있었다. 하우장성은 외진 곳이라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사람도 없는데 관심이 있어서 2년 전부터 공부해왔다는 학생도 있었다.
학부모와 학생들의 만남을 마치고 사진을 찍었다. 점심도 맛있게 먹었다.
나는 이제 다시 껀터로 돌아가야 한다.
5. 껀터를 가다
껀터는 따이 사장과 함께 승용차를 타고 가다가 내리니 쉽게 껀터로 올 수 있었다.
껀터의 Big C마트 근처에서 내려서 마트를 구경하고 쎄옴을 불러서 닌끼우로 왔다.
아직 호텔을 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강가로 갔다. 생각보다 사람들이 꽤 많이 지나다니거나 의자에 앉아있었다.
나도 의자에 앉아서 호텔 예약도 해야 하니까 휴대폰을 만지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나에게 접근한 두 아줌마와 열 살 베기 아이가 있었다.
닌끼 우 공원에서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니 맘이 통했다.
그들은 나에게 배를 태워달라고 한다. 속으로 첨 본 사람들이 벌써부터 나에게 공짜를...
나는 일부러 꾀를 냈다.
"나는 너희 집에 방문해서 저녁밥을 먹고 싶다."
조금 생각하는 듯하더니 흔쾌하게 "좋아요"라고 했다.
오늘은 먼 여행이 싫었다
나는 이들과 큰 인연을 맺었다.
어느 여행지나 그렇듯 시내 중심가나 관광객들이 밀집된 곳은 밤 풍경이 멋있다.
특히 껀터는 Ninh Kieu공원이 강가에 자리 잡고 있어서 밤 풍경이 아름다워서 여행자들이 이 근처에 머물기를 좋아한다.
나 역시 웨스트 호텔이 깨끗하고 저렴해서 여기에서 이틀을 머물기로 했다.
요즘 같은 비수기에는 호텔비가 아주 싸다. 더군다나 COVID19까지 겹쳐서 더 싸다. 아고다 상품 사이트에서 31000원이었다.
주말이라서 그런지 여행자 많은 편이었다. 물론 6개월 전만 해도 이보다는 몇 배 잘 나가던 이곳에도 해외 관광객들이 끊겨 겨우 국내인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껀터의 닌끼 우 거리는 처음 방문자들의 호감을 사기에 충분하다.
사진을 보라.
주로 연꽃으로 단장한 네온사인 거리 그리고 우뚝 서 있는 호찌민 동상 게다가 강바람이 시원하게 불어 넉넉한 마음의 여유를 더해 준다.
낮에는 손님이 없다. 더워서이다. 이 때는 메콩강 안에 있는 민속마을이나 리조트를 간다.
그러나 밤에는 닌끼 우를 중심으로 해서 모여들어 강가를 걷거나 앉아서 이야기를 나눈다.
어떤 이들은 강안에 있는 유람선에 올라 수상 식사를 하고 메콩강의 밤 정서를 느끼며 즐긴다.
그러나 나는 학생들에게 말을 걸고 친해지고 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
오늘은 세 학생을 만났다. 껀터대학교 학생들이다. 고향은 모두 동탑인데 여기에 있는 명문대 껀터대학교를 진학하는 2학년 학생들이었다.
이 학생들도 나와의 만남이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내 말을 듣고 더 꿈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나는 기독교 신자이다라고 밝히고 베트남에도 기독교를 믿는 자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공감을 했다.
이렇게 기분 좋은 밤거리를 거닐다가 숙소로 돌아 왔다.
오늘은 하노이로 복귀하는 날이다.
일찍 잠에서 깼지만 아직도 잠에서 피곤이 덜 가신 것 같다.
빨리 돌아가고 생각이 든다. 여기서 특별한 일이 없는 경우 이런 생각이 드는 것 또한 당연하리라.
호텔에서 아침을 대충 먹었다. 망고 스틱을 먹 고서이다.
1킬로그램을 샀다. 싱싱해 보이고 맛도 좋았다.
오후 1시 35분 비행기를 타야 한다. 그런데 요즘 한가하니까 11시 30분에 체크 아웃을 하고 차분히 점심을 먹고 쎄옴으로 공항에 가기로 했다.
막상 점심을 먹고 나니 12시 10분이 되었다. "야, 이거 너무 늦었는데!" 하면서 공항에도착하니 12시 35분이었다.
다행히 무사히 체크를 하고 표를 받아 검색대를 통과하면서 메콩 유역의 여행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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