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꾸옥 가는 길을 락자Rach Gia로 선택했다. 비행기 아닌 배를 타고 푸꾸옥을 가는 길도 있다. 락자는 3백년 전 캄보디아 땅이지마 베트남이 정복해서 빼앗았다. 롱수엔에서 7만동을 주고 버스에 올랐다. 내가 2014년에 가봤기 때문에 생소한 곳은 아니다. 그러나 배로 가는 것은 처음이다.
가는 길이 멀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두 시간 거리라서 금방 도착하는 니낌 이었다. 부두에 가려는데 영업하는 오토바이 아저씨들이 호객을 했다. 10만동 부르더니 내가 5만동 가자고 하니 7만동에 데려다 준다고 했다. 거의 도착할 무렵 뱃표를 사란다. 3백50만동이었다. 여객선 안에 손님이 한산한 편이었다. 시원한 바닷물결을 헤치며여객선이 달녔다. 바람이 없어서 평화로운 여행이 되었다.
푸꾸옥에 도차하자마자 오토바이 기사가 잽싸게 왔다. 즉시 싼 호텔을 제시하며 가자고 하니 10만동을 부른다. 내가 7만동이라고 하니 9만동에 가잔다. 6년만에재차 방문 방문한 푸꾸옥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
나는 베트남어 기본은 아니까 어딜 가나 부담이 없다. 한 마디로 바가지 쓸 일은 거의 없다. 빅토리아푸꾸억호텐에 도착을 하니 오후 4시가 거의 되었다. 이틀에 6백만동이다. 하루 1만 5천원 꼴이다.
푸꾸억 섬은 300년 전만 해도 캄보디아 땅이었다. 지도를 보면 지금도 캄보디아와 매우 가까운 위치에 있다. 19975년 5월1일 캄보디아를 침범했다가 오히려 큰 참패를 당한 사건이 있었다. 현재 여기에는 포로수용소, 즉 야자수 수용소가 남아 있는데 베트남-캄보디아 전쟁 때 포획한 포로 1만 5천 명에서 많게는 4만 명이 수용되기도 했다.
사실 내가 푸꾸옥에 온 것은 이중 목적이 있다. 푸꾸옥에 딸들과 학생들을 데리고 가고 싶어서이고 또 하나는 내가 5년 전에 껀터에서 만난 딸 응아Nga가 푸꾸옥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응아랑 여기서 만날 것을 미리 약속한 상태였다.
나의 숙소는 푸꾸옥 동쪽 한 중심에 해당하는 곳에 있었다. 빅토리아 푸꾸옥 호텔이다. 이쪽에는 호텔이 밀집되어 있다. 경관이 좋고 해수욕을 즐길 장소도 좋아서이다.
여장 풀고 조금 있다가 나가보니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이 장면이 너무 아름다워서 카메라에 담았다. 바닷가가 호텔과 100미터 거리이고 바다 경관이 아주 좋다. 나가서 어둑어둑할 시간이지만 하노이에서 온 손님사진을 찍고 친구처럼 냥냥 얘기를 나누었다.
응아가 야시장에 가보라고 해서 갔는데 해산물 말고는 특별산 게 없었다. 맛있고 비싼요리를 혼자 먹을 수 없어서 10만동 미만으로 해결하기로 했다. 호텔에서 딱 600미터이니까 걸어갔다가 올만했다.
숙소로 돌아와서 에어컨 안 켜고 자는데 상당히 추운 느낌이 들어서 자다가 깨어서 잠퍼를 입고 잤다. 푸꾸옥에 오니까 밤이 편하고 좋다. 푸꾸옥은 가볼만한 곳이 아주 많다. 아주 높은 산이 없고 대신 야산이 많다. 제주도보다의 1/3밖에 안 되는 섬이지만 바다의 모래백사장이 훨씬 좋다. 세계 10대 안에 속한 에메랄드 빛 모래사장 사오비치Sao Beach가 있다. 느억맘이라는 바다생선 액젓이 유명해서 방문자들이 주문하면 택배로 보내준다. 그리고 후추생산지도 많다. 세계에서 가장 좋은 후추생산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나는 아침에 새우가 들어있는 쌀국수 4만동짜리를 먹었다. 맛은 별로지만 먹을만 했다. 그리고 숙소로 다시 와서 수영준비를 하고 바다로 갔다. 혼자니까 카메라를 가지고가지 않았다. 모래가 정말 깨끗하다. 물이 한국의 동해처럼 맑다. 여기서 수영하는 즐거움을 무엇에 비하랴! 주로 유럽사람들이 많이 와서 수영을 했다.
나는 오토바이를 렌트했다. 하루 2십만동이다. 우리 돈 1만원이다. 속으로는 오토바이를 타고 섬 전체를 돌고 싶었다. 오토바이가 좋은 거라서 불편한 게 없었다. 우선 연료부터 채웠다. 5만동(2500원)이다. 도로를 따라 동남쪽으로 돌다보니 리조트 하나가 나왔다. 가 보았다. 오토바이를 주차하자마자 나를보고 웃는 젊은이가 있었다. "어느 나라에서 왔어요?" "베트남사람입니다" 그러면서 농담을하다보니 한 청년이 하노이에서 여기로 와서 일한지 한 달채 되었다고 한다. "분양마파트나 콘도를 분양하는데 홍보를 한다고 했다. 사진도 찍고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거기서 사오비치를 향해 달리다보니 재래시장이 보였다. 생각보다 싸지는 않았다. 머루포도 조금, 미니 귤감 조금 사서 계속달렸다. 달리다가 빨리 배가 고프다는 생각에 점심을 먹으려고 길가에 있는 식당에서 돼지고기가 많이 들어있는 분깡Bun Canh이라는 돼지쌀국수를 시켜먹었다. 4난동을 냈다.
사오비치에 도착하니 해수욕장답게 잘 꾸몄다. 시원하게 펼쳐진 푸른 바다와 바닥의 에메랄드빛 모래가 조화를 이룬다. 주변의 야지수와 산들이 분위기른ㆍ 아늑하게 만든다. 손님을 맞으려고 설치한 비치양산이 돋보인다. 여기에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 어린애 손잡고 거니는 엄마 그리고 연인과 손잡고 거니는 신혼들도 있었다. 나는 혼자지만 바닥있는 모래를 손에 쥐어도 보고 글씨도 써 봤다.
이제 다시 나와서 폭포를 차지아가기로 했다. 지도를 보고 갔지만 여기가 아니라는 말을 듣고 허망했다. 오후 3시 반에 응이랑 약속이 있기 때문에 나는 일단 숙소로 향했다. 오랜만에 오토비이 운전을 70키로미터 이상 나고 나니 좀 피곤했다.
나는 응아를 만나서 시간이 되는 데까지 안 가본 지역을 가보기로 했다. 응아가 메시지를 보냈다. "야시장 근처에 왔으니까 거기로 오세요." 나는 가서 응아를 만났다. 무척 반가운지 보자마자 성큼 달려왔다.
둘이서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소수민족마을에 들렸다. 민족적인 냄새가 나도록 해서 아름답게 꾸몄다. 계곡에 물이 흐르고 등산로까지 있어서 너무 인상적이었다. 산속을 조금 걷다가 다른 곳으로 가자고 하며 나왔다.
아무래도 날이 저물어서 더 못 갈 것 같아서 야시장으로 돌아와서 한바퀴 돌며 식사를 하기로 했다.
그러니까 나로서는 에제 오고 또 온 셈이다. "맛있는 것 골라라."고 했는데 베트남식 핫포트를 골랐다. 쥬스까지 해서 3백 8십만동이다. 그런데 응아가 생선을 좋아하지 않았다. 샤브샤브 식으로 오징어, 새우, 단 생선 글고 채소와 쌀국수랑 함께 먹는건데 즐기지 않아서 괜히 여기 식당을 찾았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좀 더 지혜로왔더라면 좋았을텐데!
나는 응아의 사정을 들어보았다.
가정 형편을 물어보았다. 부모는 별로 할 일 없이 농촌 집에서 생활을 한단다.
몸의 건강이 안 좋아서란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맘이 아프다.
그런 까닭에 한국 돈 35만을 월급으로 받으면 고향에 보내줘야 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어떻게든 경우 끼니를 이어갈 정도로 살아간다는 얘기다. 위에 언니도 있고 남동생도 있다.
이들을 부양하는 셈이니 무음이 얼마나 무거울까! 나이가 스물 넷인데 결혼을 설흔 살에나 하겠단다.
내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도울 수가 없어서 안타까운 마음 맘이다. 그냥 기도하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주여, 응아에게 좋은 길을 열어주세요!" 나는 예수님 얘기를 들려주고 기도하겠다고 말했다.
밤 9시에 회사 쪽으로 가는 버스가 있다고 해서 거기까지 데려다 주고 나는 숙소로 돌아왔다.
아침에 일어나려 하니 피곤했다. 어제 모처럼 긴시간을 오토바이로 다녔기 때문인 것 같다. 그렇지만 8시까지 공항으로 출발해야 여유있게 비행기를 탈 것 같다. 마침 우리 숙소에 공항에 가는 사람이 있어서 택시로 5만동, 즉 2500원에 공항까지 갈수 있었다. 푸꾸억은 오래된 국제공항이 있었다. 2012년에 새롭게 단장하여 지금은 연간 거의 1천만 명에 달하는 여행자가 드나드는 공항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