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랏여행Dalat Travel -영원한 낭만의 봄의도시
달랏이란 동네는 가고 또 가봐도 또 가보고 싶은 아름다운 도시이다. 버스로 달랏에 가보면 알겠지만 고원지대의 소나무 숲새로 계속 달리노라면 죽죽 뻗은 소나무밭이 끝없이 펼쳐지는 게 정말 딴 세상에 온 기분이 확 든다.
자, 우리 한번 달랏으로 가볼까요? "꽃동네 새동네 차리인 동네♪♬
나는 베트남의 달랏을 '꽃의 도시', '청춘의 도시', '낭만의 도시' 또는 '리틀 프랑스'라고 번갈아 부르고 싶다.
베트남 사람들 역시도 달랏을 최고의 관광지로 꼽는다.
꽃정원에 가면 이 말이 대기하고 있으니 타보고 싶으면 한번 타보자.
달랏Dalat은 프랑스가 베트남을 점령한 이후 휴양도시로 삼았다. 이때가 1893년이었다.
해발 1500미터의 고원에 자립은 이 도시는 2016년 미국 타임지에 '세계에서 가장 매력있는 여행지'로 꼽았다.
프랑스가 베트남이 얼마나 매력있는 땅인지를 알았기에 눈독을 들여 재침공까지 했지만 끝내는 망신만 당하고 물러갔다.
프랑스인들은 억울하고 분했겠지만 남의 것을 먹으려고 했던 것 자체가 죄악이었다.
그렇지만 베트남은 개방정책 이후로 프랑스에게도 마음껏 와서 볼 수 있도록 여행자율화를 단행했다.
달랏시내이다. 높은 곳으로 이동하다가 보면 이런 프랑스풍의 달랏시내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곳의 이름이 달랏이라고 지어진 이유도 프랑스에 의해서이다. 달랏이란 말은 라틴어에서 따온 'Aliis Laetitiam Aliis Temp eriem;어떤 이에게는 희열을, 어떤이에게는 신선함을' 준다는 의미라고 한다.
이런 신비롭게 펼쳐진 고원의 조화로운 풍경을 볼 때마다 하나님의 위대한 창조솜씨라는 것 외에 다른 표현을 갖다 붙일 그 어떤 것도 없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하나님의 지혜에서, 하나님의 플랜에서, 하나님의 사랑에서, 하나님의 디자인에서 비롯된 아름다운 세계 속으로 내가 들어올 수 있었음에 감사하며 찬송할 뿐이다.
메콩델타의 평야만 바라보다가 남중부 고산지대가 나타나고 시원한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대니 얼마나 매력적이고 환상적인 느낌이 들었을까!
마치 이집트와 아라비아 사막만 바라보다가 헤르몬 산이 보이고 초원이 있고 요르단 강물 흐르고 있는 땅을 일컬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불렀듯이 말이다.
10년 전의 나의 모습이다. 그때만 해도 달랏 여행자가 그리 많지는 않았다. 201년에 약 200만명 정도가 찾았다.
달랏은 베트남의 58개 성 중의 하나인 람동성 Tỉnn Lâm Đồng에 속한 도시이다. 이 성의 인구가 약 150만명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달랏의 인구는 꾸준히 증가해서 약 30만명 정도이다.
각 성들이 가지고 있는 특징과 자원에도 큰 차이가 있는 베트남이지만 특히 달랏시가 있는 람동성은 고산지대의 특성을 지닌 엄청난 농산자원과 산림자원 그리고 각종 연구단지와 대학교가 자리잡고 있는 데다가 매력적인 곳이다.
여기에다가 프랑스 풍의 건물과 많은 유산들이 잘 보존되어 있어 아주 훌륭한 관광상품을 선보이고 있어서 베트남인들은 물론 전세계인들이 찾아오고 있다.
다딴라폭포 옆이다. 발음을 해 보라. 다딸라 ㅎㅎ 여기와서 사랑을 하면 다 딸을 낳는다 ㅋㅋㅋ
일년에 550만명 이상이 찾는다는 이 달랏의 매력을 느껴보고 싶지 않은가!
10년 전만 해도 한국인 여행자들은 주로 호치민과 메콩지역 여행 그리고 북으로는 하노이와 하롱베이였지만 이제는 크게 변했다.
4년 전에 다낭 크게 떴다가 이제는 나짱과 달랏이 떴다.
내가 본 베트남은 어디든지 꾸미기만 하면 아름다운 관광지가 될 수 있는 매력있는 나라라는 생각이다. 전 세계에 이런 매력있는 나라가 또 있을까!
베트남사람들이 머리가 좋다. 없었던 케비블카가 각곳에 생겼다. 달랏 로빈 힐, 다낭 바나 힐, 사파 판비팡, 하롱베이 등
나는 이곳에 10년 전 호치민에 와서 정착했을 때 처음으로 여행을 했다. 그러니까 그때가 2010년이었다.
호치민 1군의 팜응우라오에 가면 여행사가 즐비한데 나는 그것 한 여행사에 2박3일 코스 패기지 여행을 했었다.
대부분 여행자들은 밤에 출발을 한다. 여행사를 통해서 가는 버스에 올라서 누워서 잠을 잔다. 300킬로미터가 넘기 때문에 8시간을 밤새달렸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기 이후로도 두번을 더 달랏에 갔었다.
그때만 해도 달랏에서 채소와 꽃들을 재배하고 딸기가 생산이 되고 여러 종류의 과일이 많이 생산된다고 들었었다.
그래서 여행할 때 꽃공원, 거베라농장, 실크공장, 실크핸드메이크 큰 매장 등을 방문하고 말린 과일을 사오기도 했었다.
현재에는 한국에서 달랏을 가려면, 비엣젯항공 직항이 있으니 편리하게 갈 수 있다. 비엣젯이 저가항공이라서 좀 불편한 점은 있으나 값도 30만원에서 40만원 정도면 왕복할 수 있고 5시간만 인내를 하면 도착할 수 있으니까 이것을 이용 해도 좋을 것 같다.
아니면 나짱에 먼저 갔다가 거기서 여행을 즐기다가 거기서 다시 달랏으로 가는 버스를 타든지 아니면 차를 대절해도 될 것이다.
나짱에서는 버스로 3시간이면 갈 수 있다.
달랏에 갈 때는 여름 옷과 가을 옷을 동시에 챙겨야 한다. 보통 연 평균 날씨가 17도에서 25도를 유지하지만 최저 0.1도를 내려간 적도 있다.
4월부터 10월 사이는 우기철이니 만큼 우산도 챙길 필요가 있다. 그리고 아침에 안개낄 때가 많은 편이니 이점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
1. 쑤언흐엉호수 Hồ Xuân Hương
달랏 여행자들이 달랏 시내로 진입하는 순간 한눈에 쏙 들어오는 아름다운 호수가 있다. 이 호수가 쑤언흐엉호수이다.
프랑스가 지배할 때 만들어진 인공호수이다. 17세기의 레왕조 말기의 유명한 여류 작가, 시인 쑤언 흐엉Xuân Hương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한다. 참고로 작가 쑤언 흐엉은 '쯔놈 문학의 영왕'이라고 불린다. 쯔놈은 중국어를 약간 변형한 형태의 베트남 민족문자이다.
빙 한 바퀴 돌려면 7km이니까 자전거를 타고 돌면 좋은 것 같고 아니면 야시장쪽에서 달랏꽃정원까지 걸어도 의미있는 산책이 될 것이다.
나는 실제로 걸어갔다가 다시 걸어서 돌아왔다.
달랏의 주민들도 이곳을 무척 좋아해서 산책하는 사람, 책 읽는 학생, 데이트하는 남녀 등을 쉽게 볼 수 있다.
여기에 가세해서 외부인들과 외국들이 조석으로 산책을 즐기는 것을 볼 수 있다.
2. 달랏 꽃정원 Flower park in Dalat
베트남사람들은 어느 민족 못지않게 꽃을 좋아한다. 그래서 한국에 비해 꽃 소비량이 열 배가 많은 나라다.
이 꽃들이 고산지대나 북쪽 하노이 위에 있는 지방에서 생산이 된다.
그런데 달랏은 예로부터 꽃생산 제1위로 자리매김을 해오고 있다. 현재는 약 8천 핵타아르 면적의 꽃농사를 하고 있는데 남부지역 전역에 소비가 되고 있다.
그리고 아시아 여러 국가와 유럽까지도 수출이 진행되고 있다.
따라서 달랏 꽃공원 또는 꽃정원이 만들어진지 오래되어 이곳에 여행하는 분들이 첫번째로 들리는 관광지로 환영을 받고 있다.
매년 12월 20일경에는 꽃축제가 열리는데 꽃을 좋아하는 분들은 이 때를 맞춰서 여행을 가는 것도 권장하고 싶다.
여기에는 부수적인 여러행사가 펼쳐지는데 많은 외국인도 참여하고 한국도 교류행사를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는 꽃이 있는 곳이라면 얼른 가는 사람이다. 한국에 있을 때에도 1년생 화초를 매해마다 가꾸었던 사람이다.
그러니 달랏에 와서 이런 꽃을 보며 사진을 찍을 때 맘이 어떠했을까!
나는 여기서 사진을 찍다가 미국에 사는 베트남인을 만났다. 지금도 연락을 하고 지낸다.
같이 사진을 찍었다. 이것 또한 내 개인에게는 깜짝 이벤트이다.
"꽃집에 아가씨는 예뻐요. 그렇게 예쁠 수가 없어요~~♬"
3. 크레이지 응아 하우스 Crazy Nga House
미쳐버리고 싶어요? ㅎㅎ 그러지 말고 여기로 오세요. 단순한 크레이지가 아닌 이곳에 오세요.
아, 이런 이상야릇한 집도 구경거리이구나 싶을 정도로 즐거움을 선사하는 집이 있다.
처음 방문자들이 이 집을 5층까지 구경하면서 비판과 조롱 또는 경탄 등으로 여러 가지 반응을 나타내면서 붙어 준 이름이 바로 '크레이지 하우스'란다.
이 집의 이름이 Biệt thự Hằng Nga, 즉 Hằng Nga guesthouse였다. 달랏의 건축가 건축가 Đặng Việt Nga의 설계로지어진 독창적 인 건물이다.
중국인민일보에서 세계 10대 창의적인 건축물의 하나로 꼽히기도 했었다. 이 집은 1990년 처음 오픈했다.
동화 속의 집과 같이 건물의 전체 디자인은 거대한 나무와 비슷하며 동물, 버섯, 거미줄과 같은 자연적 형태를 나타내는 조각 된 디자인으로 구성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 집을 만들게 된 것은 모스크바 대학에서 건축학 박사 학위를받은 Trường Chinh의 딸인 Nga 씨가 디자인이 달랏 도시 주변의 자연 환경과 카탈로니아 건축가 Antoni Gaudí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이라고 한다.
Đà Lạt시 인민위원회는 수년간 이 건축물의 미학의 부족을 빌미로 우려를 했었는데 결국은 개성있는 건축물로 분류를 시도하면서 “표현 주의자의 건축양식” 라고 묘사했다.
그러나 방문객들은 일반적으로 이 집에 대해 긍정적으로 반응하여 "용감한", "브릴리언트", "전적으로 우주적"이며 그녀의 작품에 대한 비전과 헌신으로 Nga 씨를 칭찬했다.
한 프랑스 관광객은 다음과 같이 논평했다고 한다.
“인생의 의미를 보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동화 속의 이 집은 나의 어린 시절, 물건이 순수하고 자연스러웠던 시절로 되돌아가게 했습니다.
이 집은 10개의 방을 게스트하우스로 이용하고 있다.
이 집의 주소는 Crazy House, 03 Đường Huỳnh Thúc Kháng, St, Thành phố Đà Lạt, Lâm Đồn이다.
이 게스트 하우스에는 10 개의 테마 룸이 있는데 각 테마별로 방 이름을 동물의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다.
즉 호랑이 방, 독수리 방, 개미 방 및 캥거루 방이 있으며, 각각 테마와 일치하는 장식이 있다.
따라서 호랑이 방의 벽에는 적목 현상이 나타나는 큰 호랑이가 있다. 캥거루 방에는 배꼽에 벽난로가 달린 조각 된 캥거루가 있다.
독수리 방의 벽난로는 거대한 독수리 알의 형태이다.
대부분의 객실은 동물의 주제가 특정 국적과 관련되어있어 한층 높은 수준의 상징한다.
Nga 씨는 호랑이 방을“중국인의 강점”으로 표현한다. 독수리 방은 미국인처럼“크고 강하다”.
그리고 "열심히 일하는 베트남인"을 나타내는 개미 방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크레이지 호텔에서 투숙하면서 내려다 보이는 달랏시의 야경이다.
4. 달랏 기차역 Da Lat Railroad Station; Ga Đà Lạt
왜 이런 고원지대에 기차가 달리는 게 필요했을까! 역시 프랑스는 이런 기술 하나는 끝내주는 나라이다.
생각해 보라. 프랑스인들이 영원히 베트남을 지배할 줄 알았겠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이었을까! 이렇게 아름다운 곳을 떠나기 싫어서 얼마나 분통했을까!
그러나 프랑스는 평온하게 살고 있는 나라들을 침범해서 속국으로 삼으려고 했으니 이것 또한 큰 죄악을 저지른 셈이다.
중국만 경계하면 될 줄 알았는데 느닷없이 프랑스가 슬쩍 발을 들어놓고 나중에는 송두리째 먹으려다가 다시 토해내었다.
그래서 이곳 달랏 역시도 영원한 베트남 땅이 되었다.
베트남인들은 지혜가 많아서 오히려 이런 곳을 관광벨트화 해서 가장 좋은 상품을 만들어 전세계인들을 유치하는 전략을 펴고 있는 것이다.
달랏에는 여기저기에 프랑스의 역사가 그대로 묻어있다. 달랏의 기차역 역시도 마찬가지이다.
1932년 프랑스 건축가 Moncet와 Reveron이 아트 데코 건축양식으로 설계하고 건축을 시작하여 6년만인 1938년에 문을 열었다.
하지만 베트남 전쟁 후반기인 1964년에 철도가 파괴되었고 1968년에 철도를 포기한 이후로 거의 사용되지 않았었다.
이 건물은 1990년대에 다시 문을 열면서 한정된 범위 내에서 다시 복원이 되었다. 근처의 Trai Mat 마을로 이어지는 트랙의 7km 구간은 관광 명소로 운영되고 있다. 달랏에 와서 시간이 허락된다면 이 람동성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기차를 타보는 것도 좋으리라 생각된다.
현재는 2009년 복원 된 4 대의 철도 차량이 Da Lat-Trai Mat 관광 철도에 사용되었으며 "Dalat Plateau Rail Road"라는 표지판이 있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한국도 남북이 서로 왕래하면서 복원된 철도로 중국, 러시아는 물론 유럽까지 진출할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염원해 본다.
남북의 철도 복원은 단순히 관광상품으로서 뿐만 아니라 엄청난 부가가치의 경제효과가 나타나리라 기대한다.
기차역으로 가 보자. 넓다란 광장 정원과 함께 달랏역Ga Đà Lạt이라는 글씨가 들어온다.
프랑스의 식민지 때 지은 건물답게 완전히 프랑스풍의 매력적인 양식이 눈에 띤다. 뽀족한 세 개의 지붕이 정말 멋있다.
이것은 달랏의 상징으로서 랑비앙(Lang Biang)산의 봉우리를 재현한 모습이란다.
가파른 고지대을 어떻게 기차가 다닐 수 있었을까가 의문스러울 정도이다.
사실 1902년에 철도를 건설하자는 제안이 들어왔으나 1908년부터 단계적으로 진행하며 5개의 터널을 터널을 뚫어가며 고도를 최대한 낮추기 위해 구불구불하게 건설했다. 철도의 총 길이가 84Km이다.
이 철도의 노선 1932년에 달랏에 닿았다. 그렇지만 역사를 건축하고 나서 1938년에 개통하게 되었다. 뜨뜨~!
매표소에 가면 VIP1,2 그리고 일반석으로 나뉜다. 값이 각각 다르다. 우리 돈으로 약 7500원에서 5000원이 조금 넘는다.
열차를 타고 바깥세상을 보노라면 람동성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가 다시 연상이 될 것이다.
"평소에 특등석에 앉아서 가기 힘드니 오늘 한번 특등석에 앉아서 가시구려!"
4. 바오다이 궁전 Dinh Bảo Đại -마지막 왕 바오다이의 휴양지
달랏에 처음 갔을 때 나는 이곳 왕궁을 찾았다. 안으로 들어가게 되면 왕의 정원이 있고 소나무 숲으로, 새들의 정원, 작은 호수를 볼 수 있다.
베트남이 마지막 왕 바오다이Hoàng đế Bảo Đại이 이곳을 휴양지를 삼았다는 말에 얼른 공감이 갔다. 호치민에 몇 달을 지내다가 여기에 아서 느끼는 선선한 기후와 맑고 푸른 하늘 그리고 울창한 숲이 확 기분전환을 시켜주는 느낌이랄까 그런 게 있었기 때문이다.
내 생각이지만 이곳을 모르고 지나치시면 후회할 것이다. 꼭 시간을 내서 가 보시라고 하고 싶다.
이 궁전은 1933년에서 1938년까지 지어졌는데 프랑스 건축가와 공동 설계로 지어졌다고 한다. 왕의 궁전이다 보니 화려하고 아름다운 것은 물론 한국의 청남대처럼 산책로도 있고 아름다운 관상수들을 볼 수 있다. 마지막 응우웬왕은 사실 빛을 보지 못하고 말았지만 이 궁전은 옛 프랑스 통치시대와 일본제국주의를 묵묵히 말해주고 있다.
13대 응우웬 마지막 왕은 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 지원으로 왕으로 옹립이 더었지만 미국의 지원을 받은 반대세력의 완강한 거부로 왕정이 폐지되고 왕은 프랑스 망령의 길을 가야 했다.
이런 역사를 더듬어 보자면 마치 조선의 마지막 왕 고종황제 때의 일들이 한꺼번에 스쳐가기도 할 것이다.
1913년 10월 22일 베트남 후에의 황성인 자금성에서 출생하였고, 1922년 황태자로 책봉된 후 학업을 위해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그는 프랑스로부터의 독립을 염원하며 꿈을 키웠다.
1925년 11월 학업 도중 부친의 사망으로 귀국하고 1926년 1월 황제로 즉위했다. 그이 나이가 13세였고 그때 연호를 바오다이 정했다.
그는 남은 유학공부를 마치기 위해 다시 프랑스로 갔다.
1858년 이래 베트남을 거듭 침공해 보호국으로 삼은 프랑스가 1887년 라오스ㆍ크메르와 함께 베트남을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연방으로 통합해버린 터라, 바오다이는 아버지가 그랬듯 이름 뿐인 황제에 지나지 않았다.
1945년 3월 프랑스군을 몰아낸 일본이 바오다이에게 프랑스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게 하고 그에게 왕의 제위를 확인시켜 주었다.
하지만 1945년 8월 일본이 폐망하고 물러가게 되자 그의 왕위도 폐위되는 사태로 이어졌다.
그는 귀국하지 못하고 칸에서 머물며 살다가 1997년 7월 31일 프랑스 파리 육군병원에서 임종해야 했다.
당신도 왕이 되고 싶은가? ㅎㅎ 마차를 타보시라. 그 안에는 양쪽으로 왕이 탔었던 자동차가 진열되어 있고 또 마차가 대기하고 있다.
영업시간은 오후 5시 30분까지이다.
이 궁전은 2층으로 되어 있다.
1 층 : 왕궁에서 회의장, 연회장, 외국인 손님 및 정부 공무원 접견실. 정문에는 넓은 면적 (약 4m)이 있으며 1 층에 들어가기 전에 로비에는 리셉션 룸과 작업실이 있다.
오른쪽에는 바오 다이 왕의 사무실, 도서관이 있다. 왼쪽에는 회의실과 다른 업무실이 있다.
내부는 엔터테인먼트 룸이다. 궁전의 업무실 디자인은 내부와 외부의 건축 조경 공간에 부착되어 강철 프레임으로 만든 통로가 있고
유리 창문을 통해 서로 연결되어 조화로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예식장에는 시아누크 왕자 (캄보디아)가 바오 다이에 준 앙코르 와트 사원의 그림 인 메멘토가 여전히 남아있다.
2층 : 궁전의 2 층 전체는 Bao Dai 왕의 침실, Nam Phuong 여왕, 공주와 Bao Long 왕자, Phuong Mai 및 Phuong Lien 공주를 포함한 가족 활동에 사용되었다.
Bãoo Thăng 왕자. 전 황제의 침실 바깥에는 아름다운 봉라우 (Vong Lau) 달이 있는데, 이는 전 황후와 여왕이 달을 보도록 배치하는 데 사용했다. Bao Long은 왕좌 (1939 년 이래)를 계승하도록 선택되어 방이 금으로 장식되었다.
Bao Dai 왕은 부자 Nguyen Huu Hao의 아들 인 Nam Phuong 여왕 (실명은 Nguyen Huu Thi Lan)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남 푸옹 여왕이 프랑스에 자녀를 데리고 유학하게 된 1949 년 이래로 바오 다이는 아프리카 여성 부 이몽 딥 (Bui Mong Diep)과 함께 살았습니다.
Bao Dai가 망명 생활을하기 위해 프랑스로 갔을 때는 이 궁전이 Ngo Dinh Diem 정부의 고급 리조트이자 나중에 Nguyen Van Thieu 궁전으로 사용되었다.
베트남 전쟁이 끝난 후, 궁전은 수년 동안 람동 주정부위원회의 재정 및 관리위원회에 속해 있다가 2000 년 중반에 Xuan Huong 관광 및 서비스 회사에 인계되었다.
5. 꽃, 채소의 랑화반탄( Làng hoa Vạn Thành Đà Lạt)
꽃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꼭 이곳을 방문하시라고 말하고 싶다. 꽃정원 달랏 못잖게 여기는 여기대로 더 큰 구경거리와 체험장이 있는 곳이 꽃과 채소의 장소이다.
이곳에 찾아갈 때 좌우로 꽃농장 그리고 채소 및 딸기 농장 비닐 하우스가 끝없이 펼쳐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지역에 사는 분들의 90%가 꽃과 채소 농사에 매달린다. 젊은 청년들이 많았던 과거와는 달리 나이 먹은 사람들이 주로 이 일에 종사하고 있다.
나는 농사꾼 아저씨를 만나서 직접 이갸기를 나누었다. 베트남어가 좀금 가능하니까 그것도 다행이었다. 이분의 경우는 이보다 더 고산지역에 살다가 달랏으로 이사를 왔고 결혼해서 아이를 둘 낳고 키우면서 꽃농사를 짓기 시작했는데 20년을 꽃농사만 지어왔단다.
일손이 부족해서 형님을 모셔와서 함께 일을 한다고 했다.
개인들이 정부의 보조를 받자 못하고 모두 열심히 일해서 자수성가한 사람들이라고 보면 된다. 이자율이 매우 높기 때문에 대출해서 시설하기도 어려울텐데 나름대로 열심히 일해서 모은 돈으로 시설을 확충해 왔다고들 말한다.
내가 만난 Thuong 씨는 약 5천 평의 화훼농사를 하고 있는데 가족 4명이 매달려서 다 감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름대로 시설재배를하면서 스프링쿨러 시설과, 큰 물탱크 시설 또는 물웅덩이를 파놓고 모터를 사용하여 물을 공급하고 있다.
꽃이 대령으로 생산되면 한꺼번에 출하가 안 되면 큰 일이 난다. 그래서 냉장시설을 갖추었다. 한 달까지는 거뜬히 보관이 가능하다고 하니까 다행이다.
꽃이란 주로 시즌이 있다. 설을 전후로 해서 가장 많이 나가는 국화종류가 있고, 발렌타이데이나, 여성의 날을 위해 장미를 생산한다.
베트남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집에 우상을 두고 꽃을 꽂기 때문에 있기 때문에 꽃 수요가 한국보다 10배나 많은 나라이다.
그런데 더운 지방이라서 아무데서나 꽃생산을 할 수 없다. 채소 생산 역시도 마찬가지이다.
바로 달랏이 최고의 적지이다. 그래서 달랏은 사계절 꽃피는 동네이고 여기 특성에 맞는 꽃들을 대량생산하여 베트남 중남부 꽃소비는 물론 동남아와 유럽으로 꽃을 수출하기에까지 이르렀다.
시선한 야채와 딸기 역시도 이곳에서 잘 된다. 아직 품질의 문제에 있어서는 한국에 못미치고 있지만 앞으로 매우 전망이 밝다.
더군다나 요새요새마다 커피숍과 과일쥬스를 맛보며 낭만을 즐기는 장소들이 있어서 더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상품들이 곳곳에 생겨나고 있다.
가을이 되면 가장 아름다운 꽃이 국화가 아닐까 싶다. 흰색, 노랑색, 붉은 색, 황금빛색 등 다양하다. 모양도 다양해서 대국, 중국. 소국으로 쉽게 나누지만 모양과 색 그리고 크기에 따라서 다양한 이름을 붙이기도 한다.
한국만큼 다양한 국화를 생산하내지는 못하고 있지만 앞으로 베트남의 화훼원예는 발전 전망이 매우 밝다. 기후가 좋고 사람들이 영리하고 또 아시아는 물론 유럽과도 가까운 거리에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곳 랑호아반탄에서는 여행자들을 위해서 큰 이벤트를 만들어서 꽃과 채소 재배 장면을 보여주며 수입을 높이고 있다.
이곳에 들어와서 보면 달랏의 새로운 낭만을 느끼면서 마음껏 사진을 찍고 추억을 남길 수 있는 시간을 보냘 수가 있다.
주소: 40 Vạn Thành, Phường 5, Thành phố Đà Lạt, Lâm Đồng이다.
여러분이 이 지역을 돌다보면 신선한 딸기쥬스를 맛볼 수 있는 기회도 있을 것이다. 여유를 가지고 이 지역의 꽃농사 장면을 볼 수 있다면 더욱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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