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의 소리

새사람을 입으라

좁은길을 걸으며 2010. 6. 6. 20:48

 

 

새사람을 입으라

성경/에베소서4장 17-24절                                                  2010/060/06    이송로목사

 

교라는 것이 무엇이냐? 이것은 단순히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연설하는 것이 아니다.

설교는 하나님의 권위를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선포하는 것이다.

여러분과 의견을 나누는 시간이 아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도 그런 표현을 했다.

“With the Lord’s authority Let me say this....”(17절).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도 복음을 복음되게 전하야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설교를 듣는 자의 태도에 있어서는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처럼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열린마음, 겸손한 마음’이 필요하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복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신 목적과 부르신 뜻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 안에 있다. 그리고 교회 안에 있고 교회의 소중한 지체들로 연결이 되어 계속 자라가고 있다.

 

이제 5월이 지나고 6월이 되니까 온천지가 짙은 푸르름으로 뒤덮혀 있다. 정말 볼수록 아름답고 신기하기만 하다. 겨울 내내 앙상한 가지만 남았었던 가지에 누가 이렇게 아름다운 옷을 입혀주셨을까? 이런 아름다운 산천초목들을 바라보면서 우리들도 옛사람 그대로 있지 말고 새사람을 입어야 하겠다.

 

 

1. 이방인 같이 살지 말라

 

이방인들의 삶은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는가? ‘허망’이다. 이 말은 ‘Hopelessly confused’이란 뜻이다.

인생의 좌표가 분명하지 않을 때 ‘허망’한 것이다.

거기서 일어나는 것이 무엇인가? ‘방탕과 방임’이다.

그들은 어두움의 종이 되어 이미 ‘분별력’을 상실해 버렸다. 하나님을 상실해 버린 인간은 ‘무지’와 ‘교만(완악함과 고집)’ 등으로 꽉 차 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진리가 들어갈 구멍이 없다.

이런 사람들 마음 속에는 ‘모든 더러운 욕심(욕망)’으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채우지 못할 육체의 욕망의 노예가 되어 버렸다.

 

이런 사람들의 상태는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우리의 과거가 그러했다.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난 우리의 과거의 모습은 항상 허전하고 허탈한 생활의 연속이었을 뿐이다. 세상에서 취하는 만족들은 일시적인 것으로써 바닷물을 마시는 것과 같아서  영혼의 갈증을 더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여기서 그런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 아무도 없을 것이다.

 

 

2. 그리스도의 모범에 따르라

 

그러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배우고 알았다.

‘예수 그리스도!’ 그는 누구신가?

그는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 나의 구주’실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의 구주’시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지금까지 그분에 대해서 많은 것을 배워왔다.

20,21절이 그것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리스도를 본받아’ 살아야 한다. 그분이 우리의 신앙과 삶의 표준이라는 것이다.

그분을 마음 중심에 왕으로 모셔들일 뿐만 아니라, 그분의 삶의 모범을 따라야 한다.

그래야 그리스도를 확실히 아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말로만, 입술로만 그리스도를 안다고 한다면 그것은 위선이다.

 

우리는 특별히  산상수훈의 메시지처럼 살아가야 한다. 그 속에 예수님의 성품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의 것임이요...."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먼저 남을 대접하라." 그리고 "네 원수를 사랑하라."

그렇게 외치시던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자기 자신을 십자가 위에서 몽땅 내어주셨다. 그리고 친히 자신을 죽인 원수들을 위해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라고 하셨다.

여러분 자신에게 물어보라. “나도 이렇게 살 수 있는가?”

 

 

3. 그렇게 살기 위해서는 새사람을 입자

 

우리가 적어도 주님을 따라 산다고 말할 때에 주님과 반대되는 요소들은 다 청산해 버려야 한다.

그것을 ‘옛사람’이라고 말한다.

그 옛 사람은 어떻게 살아왔는가?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가는 구습’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것들을 언급하는 성경들이 많다. 로마서에서는 ‘방탕, 술취함, 음란, 호색, 다툼과 시기’(롬13:13)라고 말하고 있다.

갈라디아서에서는 ‘음행, 더러운 것, 호색, 우상숭배, 주술, 원수 맺는 것, 분쟁, 시기, 분냄, 당짓는 것, 분열, 이단, 투기, 술취함, 방탕함과 그와 같은 것들...’(갈5:19-21)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런 생활의 결과가 가져다 주는 것은 지옥형벌이라는 것이다.

 

바로 이와 같은 생활 습성(구습former ways)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곧 ‘옛 사람을 벗어버리는 것’인 것이다.

우리는 누더기를 걸친 채로 새 옷을 입을 수가 없다. 목욕도 안 하고 속옷을 갈아입을 수 없다.

일단 새 사람을 입기 위해서 옛 사람을 벗어버려야 한다. 이것은 예수님과 함께 우리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릴 때 가능한 문제이며, 성령과 피로써 거듭날 때에만 가능한 문제이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의 본성이 바뀌는 것이다.

 

그래서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23절)라고 가르쳐준다.

심령이 새롭게 되어지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어떻게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질까?

그것은 복음의 말씀을 들을 때에 성령이 그 심령에 강하게 임해야 한다.

인력으로 안 된다. 율법의 잣대로 친다고 해서 될 일은 아니다.

성령께서 강하게 임하셔서 그 심령을 갈아엎으실 때 가능한 문제이다. 이 때에 일어나는 것은 마음 속의 죄가 생각이 나고 그 죄가 슬퍼지면서 회개의 역사로 뒤바귈 때에 심령으로 새롭게 되는 것이다.

나는 여러분에게 말씀을 전하지만 성령께서 그렇게 해 주시기를 기대하는 것 외에 어떤 방도가 없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우리가 새사람을 입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과거에는 우리의 육체의 욕망에 따랐지만, 이제는 하나님을 따르게 되고 성령을 따르게 되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는 어떤 노력도 필요없다고 말하지 않는다. 분명히 성경은 ‘새 사람을 입으라!’라는 명령을 하고 있다.

하나님은 인격적인 하나님이시다. 그분이 우리 마음을 열게 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그분을 따르는 일에 동의를 표하도록 하신다.

우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그를 따르는 삶이 무엇인지를 배웠다. 우리가 입어야 하는 옷은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924절)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성품의 옷이기도 하면서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을 가리키는 말이다.

 

“내 모든 소원 기도의 제목 예수님 닮기 원함이라. 예수님 형상 나 입기 위해 세상의 보화 아끼잖네. 예수님 닮기 내가 원하네 날 구원하신 예수님을 내 마음 속에 지금 곧 오사 주님의 형상 인치소서!”(452장1절).

 

하나님의 형상을 힘입은 새사람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가?

여기에 대해서는 에베소서 4장 25절-6장 24절까지에서 아주 자상하게 잘 얘기해 주고 있다.

이것이 우리 새사람된 신자들의 새로운 인생 패턴이다.

 

렇게 될 때에 우리 사회는 아름다운 사회가 되며, 가정은 행복한 가정으로, 개인은 기쁨이 넘치는 삶으로 나타날 것이다.

그 속에 역사하시는 성령께서는 우리를 보시고 기뻐하실 것이다.

우리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기를 위해서 기도하고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자. 그분은 언제든지 우리를 도울 준비가 되어 있으신 분이시다.

그리고 심령의 변화를 통해서 마음 밭이 아름답게 되기를 기도하자. 하나님은 지난날의 모든 죄는 다 용서하시고 하늘의 새 능력으로 채워주실 것이다.

그래서 그 능력을 힘입어서 세상에서 한 몫을 감당하도록 만들어 주실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죄의 노예로, 욕심의 노예로 살아갈 자가 아니다. 하나님나라의 의의 일꾼으로 살아가야 할 자들이다.

따라서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신 목적대로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할 자들로 사용되어져야' 하겠다.

 

 

 

'광야의 소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진실과 거짓  (0) 2020.08.05
모이기를 힘쓰자  (0) 2011.04.03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위하여  (0) 2010.05.31
예수님의 부활  (0) 2010.04.03
잡히신 예수님  (0) 2010.0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