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하옵소서!

서로에게 유익한 말을 하라

좁은길을 걸으며 2007. 8. 5. 20:49

 

 

올해 첨으로 벤자민 열매가 아름답게 맺혔습니다. 놀라워요!

 

               유익한 말을 하라                2007/07/29/주일

                        (에베소서4장25-32절)         전주서광교회 이송로목사


리가 예수를 믿고 새로워져야 할 것들이 많이 있지만 그 무엇보다도 입의 말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우리 옛말에 “말이 씨가 된다!”고 했습니다. 솔로몬은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입의 복록으로 먹고 산다고 했습니다. “사람은 입의 열매로 인하여 복록(福祿)에 족하며 그 손의 행하는 대로 자기가 받느니라!”(잠언 12:14).

어쩌면 우리가 한 말이 그냥 입에서 나가면 그만인 것 같아도 반드시 그것은 자기에게로 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어떤 분이 [德談(덕담)과  惡談(악담)의 차이]라는 글에 이런 말을 써놓았습니다.


덕담을 하면 듣는 사람도 기분 좋고

덕담을 하는 사람은 마음이 편안해진다

악담은 듣는 사람도 고역이고

악담을 퍼부은 사람 마음이 더욱 괴롭다


하나님이 지으실 때 사람의 마음 속에

천사처럼 아름답고 향기로운 덕담주머니를 만들어 넣어주셨지만,

악마는 무섭고 고약한 악담머니를 만들어 넣었나보다


그런데 덕담주머니는 옥매듭을 해 놨고

악담주머니는 반은 이미  풀려있나보다

요즘 악담 함부로 하고 마음 고생하는 사람 있는데

나도 그축에 드는 것은 아닌지...!



바울 사도는 에베소교회 성도들에게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엡4:24)고 말씀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예수 믿으면 우리의 삶 전체가 새로워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사람이 바꿔야 합니다.

바로 성령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행하시는 분이시며 우리의 생각까지도 그분의 지배를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크리스천으로 살아가면서도 아직도 입술의 말 한 마디를 바르게, 예쁘게 할지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오늘 성경 본문에서는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모든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엡4:29)고 말씀합니다.

말에는 더러운 말도 있고 깨끗한 말도 있습니다. 자기는 깨끗한 말을 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항상 듣는 사람의 입장을 생각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한 마디로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 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자기로서는 옳다고 생각하고 상대방을 고려하지도 않고 거침없이 말을 쏟아내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상대방이 들어서 기분 좋은 얘기를 하라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들어서 유익이 되지 않는다면 입을 다물고 있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오늘 우리 사회에는 악플러들이 아주 많아졌습니다. 컴퓨터 안에서 다른 사람을 비방하는 글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서 ‘악플러’라는 신생어가 만들어졌습니다. 얼굴이 보이지 않고 자기 이름을 밝히지 않기 때문에 상대방에 대해서 전혀 알지도 못하면서 주워 담을 수 없는 욕들을 해 놓습니다.

이번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들의 인질 사건만 하더라도 무조건 기독교 전체를 싸잡아서 욕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거기에 간 사람들의 양심이 나쁜 것이 아니라, 초상집에 가서 악담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더 악하고 추한 마음이 아니겠는지요?


우리는 크리스천으로서 경우에 합당한 말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모두가 공감을 할 수 있어야 하겠고 무엇보다도 ‘은혜를 끼치는 말’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코미디언이 되라는 말이 아닙니다. 코미디언의 말은 한바탕 웃기고 지나가는 말은 될 수 있지만 그것을 듣고 은혜 받았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목사가 각 가정에 심방 가서 하는 말은 웃기지는 않지만 ‘은혜를 끼치는 말’을 하고 돌아옵니다. 그것은 심방 가기 전에 “아무개 성도님 집에 가서 어떤 말씀으로 은혜를 끼칠까?” 기도하며 준비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우리들의 입은 마치 심방 가서 하는 말처럼 상대방을 고려해서 꼭 필요한 말, 들어서 유익한 말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나 가정에서 직장에서 이런 것을 잘못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말 한 마디로 분위기를 망쳐놓고 공동체 전체를 짜증나게 만드는 경우를 봅니다. 이런 사람을 가리켜 처신머리가 없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우리에게는 처신머리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똑같은 상황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덕담을 만들어 낼 수도 있고 악담을 지어낼 수도 있습니다. 어떤 분이 써놓은 덕담을 한 마디 하겠습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

나이가들면서 눈이침침한것은.

필요 없는 작은 것은 보지 말고   필요한 큰 것만 보라는 것이며.

귀가 잘 안 들리는 것은,

필요 없는 작은 말은 듣지 말고, 필요한 큰 말만 들 으라는 것이지요.

이가 시린 것은,

연한 음식만 먹고 소화불량 없게 하려함이지요.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러운 것은,

매사에 조심하고 멀리 가지 말라는 것이지요.

머리가 하얗게 되는 것은,

멀리 있어도 나이 든 사람인 것을 알아보게 하기 위한 조물주의 배려랍니다.

정신이 깜박거리는 것은,

살아 온 세월을 다 기억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성령을 받아 거룩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영의 생각’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영적으로 거듭난 사람에게는 그와 같은 능력, 또는 마인드를 주셨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말을 생산해내는 공장과도 같습니다. 생각에 없는 것이 말로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오래 믿으면서도 따지기 좋아하고 악한 본성을 못 벗어버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회개하고 성령충만함을 받는 생활 가운데서 날마다 레이드가 이뤄져야 합니다. 예수의 보혈의 능히 잘못된 것들을 씻어낼 능력이 있습니다. “새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골3:10).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생각이 바뀌면 역시 입의 말이 바뀝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를 알게 됩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는 우리가 말의 처신을 바르게 하고 살아가도록 도우십니다.


꼭 해야 할 말 안 해야 할 말만 분간할 줄 알아도 어디가나 환영받는 사람이 될 것이고, 결코 여러분의 인격에 있어서 나쁜 평가를 받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말의 실수가 없다고 하면 안 됩니다. 우리가 이미 구원을 받았지만 아직 성화의 과정에 있을 뿐 미완성입니다.

사도 야고보는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이 온전한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다 말에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 한 사람이라.”(약3:2).

그런데 우리는 온전한 사람이 못 되는 것은 말의 실수를 늘 하고 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늘 예수님을 닮아가려고 해야 합니다. 나는 솔직히 예수님의 겉모습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성경을 통해서 예수님의 마음을 알고 있습니다. 바로 주님의 마음을 본받는 삶을 살려고 애를 써야 합니다.


어느 날 예수님의 제자들이 음식을 먹을 때에 씻지 않고 먹는 다고 비난하는 바리새인들이 있었습니다. 오늘날로 치자면 위생적으로 볼 때 손을 씻고 먹는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을 지적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마15:11).

“악한 생각과 살인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마15:19,20).

바리새인들에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은, 바리새인들은 겉을 깨끗이 하는 일에는 신경을 쓰지만 속은 위선적인 삶으로 꽉 차 있었습니다.

현대 크리스천들 중에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멋지게 차려입고 얼마든지 신자들의 대열에 끼여 있을 수 있지만 마음을 들여다보면 구더기가 득실거리는 마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기 때문에 행여나 자기 자신들이 드러날까 봐서 대형교회 안으로 숨어들어갑니다. 작은 교회 안에서는 그런 것들이 아주 잘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미 넓은 길을 선택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진실하게 믿어야 합니다. 속과 겉이 일치하도록 믿어야 합니다. 이 말은 말과 행동이 일치하다는 말로 바꾸어서 생각해도 좋습니다. 진실한 신자는 언행일치의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모두에게 유익을 주는 사람으로 살 수가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보다 더 인격적인 사람으로, 보다 더 지혜 있는 사람으로 이 세상을 살아갈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덕을 세우는 말’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덕을 세운다’는 말은 헬라어 ‘오이코노스’라는 ‘집을 세우다’는 말에서 나왔습니다. 우리는 말을 삼기 조심하고 모두에게 유익이 되는 말을 할 줄 앎으로써 가정을 바르게 세워가고, 교회를 바르게 세워가고, 이 사회를 바르게 세워가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어디를 가나 세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가는 곳에 세우는 일이 나타납니까? 무너뜨리는 일이 빚어집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말을 아껴야 합니다.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키 어려우나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잠10:19) 우리는 ‘말의 절제’를 통해서 실수를 줄여가면서 지혜로운 인생을 살 줄 알아야 합니다. “이 말은 해서 유익한가?”를 생각하고 입을 여십시오. 제아무리 옳은 말일지라도 은혜를 끼치지 못할 말 같으면 하지 마십시오.


어떤 분이 제 발로 예수를 믿겠다고 교회에 나왔습니다. 동기가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저에게 교회 나오도록 결정적인 역할을 하신 분은 어떤 교회에 나가시는 할머니였습니다.
이 분이 얼굴에 기쁨이 가득 찬 할머니 한 분을 보았는데, 길이 얼어서 걷기가 불편했기 때문에 할머니를 좀 도와드렸습니다.
할머니가 저를 쳐다보시면서 ‘아저씨! 제 구주이신 예수님을 아저씨는 아시는 지요? 그 분은 제 인생의 전부입니다. 아저씨도 나처럼 그분을 사랑했으면 좋겠어요!’라는 말이었습니다. 바로 그 할머니의 몇 마디가 그를 감동시켰습니다."

씨가 무척 덥습니다. 우리는 덕담으로 내 주변에 있는 분들을 시원하게 만들어 줍시다. 자본이 드는 것도 아니고 마음 하나 예쁘게 먹으면 됩니다.

칭찬의 말, 위로의 말, 믿음의 말, 은혜로운 말을 하는 데에 익숙해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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