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하옵소서!

하나님 마음에 쏙 드는 사람

좁은길을 걸으며 2007. 8. 26. 09:29
 

                하나님 눈에 쏙 드는 사람          2007/08/26/주일/

                        (신명기6장16-19절)           전주서광교회 이송로목사


리가 창세기 1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는 과정 속에서 계속적으로 반복되는 말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 한 마디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창1:4). 그런데 가장 나중에 사람을 지으시고 나서는 “하나님의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창1:31)고 했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을 하나님께서는 인간들로 하여금 자신에게 영광을 돌리라고하셨지만 마귀의 꾐에 빠져서 죄를 지은 후로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보다는 소유에 집착하게 되었고 그 소유욕을 채우기 위해서 늘 속이고 거짓말 하고 사는 거짓된 양심으로까지 전락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고 살기보다는 사람의 눈을 의식하며 살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시편에서,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어 선을 행하는 자가 있는가 살펴보신즉,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다.”(시14:2)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두운 밤중에 행하는 일이나 지하에 숨어서 하는 일까지도 다 보고 계십니다. 사실 하나님의 눈은 빛과 어두움을 초월하시고 시간과 공간도 초월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니이다 주께서는 내가 앉고 서는 것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나의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나이다”(시139:1-4).

정말 이런 하나님이심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누구의 눈을 더 의식하고 살아가야 할까요?

만일 여러분이 오늘 내 설교를 듣고 마음을 바꿔서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면서 살고 그 하나님 눈에 쏙 드는 정직한 인생을 살 줄 안다면 반드시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을 아주 귀하게 들어 사용하실 줄 믿습니다.


1. 불만스러울 때도 원망이나 불평을 하지 맙시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바라보시고 기뻐하실까요? 어떤 상황에서도 원망과 불평을 앞세우지 않는 사람입니다.

만일에 여러분들이 인생을 살면서 원망과 불평을 일삼는다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을 결코 들어 사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맛사의 시험'은 출애굽기 17장 1~7절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으로. 이집트를 탈출해 광야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실 물이 없자, 모세에게 대들고 있는 사건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와 하나님을 싸잡아서 비난을 했습니다. 여호와가 정말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고, “이집트에서 잘 살고 있는 우리를 끌고나와 다 죽게한다”며 모세를 비난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백성들에게 고통받는 모세의 울부짓음을 듣고 모세에게 능력을 주어 호렙산의 바위를 내려치자 물을 솟구치게 하셨습니다. 모세가 그런 기적을 보이는 순간에 하나님은 모세의 바로 옆에 서 계셨다고 출애굽기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맛사의 시험은 구약에서 가장 대표적인 하나님의 권위에 관한 인간의 도전이기도 한 사건입니다. 백성들은  모세만을 겨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실존여부까지를 의심하며 직접적으로 하나님을 시험하는 사건인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인생을 살면서 하나님을 시험하는 일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무서운 죄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하신대(마 4:5~7) 결국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은 마귀적인 행동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날도 교회 안에서 마귀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종종 나타납니다. 얼마나 무서운지 모릅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도 모르는 어리석은 자들이 있습니다.


특히 교회생활을 할 때 불평불만이 입에서 나와서는 안 됩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께 탈락시키십니다. 우리 서광교회도 역사를 놓고 보면 불평불만을 일삼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다 해고시키신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좀 모자라도, 가진 것 없고 가난하고 사회적으로 지위가 뛰어나지 못했어도 겸손한 마음으로 순종하는 성도들을 오늘날 기하게 사용하심을 봅니다. 할렐루야!


똑같은 상황에서도 그 현실을 긍정적으로 보고 오히려 그 현실을 지혜롭게 극복할 줄 아는 사람을 하나님은 귀하게 사용하실 것입니다.

[나 이제 감사하며 살리라 나 이제 감사하며 살리라 나의 하루 하루를 감사하며 살리라 나 이제 감사하며 살리라]


2. 어려울 때일수록 말씀을 순종하는 사람이 됩시다.

하나님은 항상 어려울 때, 핍박이나 환난을 당할 때 누구를 의지하는가를 눈여겨 보십니다.

사울과 다윗을 보면 아주 대조적으로 잘 나타납니다. 사울은 불레셋 군대가 쳐들어온다고 하니까 마음이 조급해졌습니다. 그리고 불레셋 군대는 이스라엘을 위협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무엘이 도착을 하지 않습니다.

사울은 제사장만이 할 수 있는 제사를 자기가 집행을 하고 맙니다. 그런데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제사가 끝나자마자 사무엘이 도착한 것입니다. 사울도 깜짝 놀랐습니다. 사무엘은 이것을 알고 사울에게 이 말씀을 전합니다.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가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삼상15:22,23).

이 얼마나 무서운 말입니까? 사울은 이 말씀을 듣고 사지가 바들바들 떨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사울을 죽일 기회를 두 번이나 만났어도 그는 왕을 죽이지 않고 이런 말을 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왕조들을 보면 아주 잘 나타납니다.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엔게디 황무지에 이르렀을 때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굴에 숨어있었고 사울이 그 굴에 들어갔을 때 다윗과 다윗의 사람들은 사울을 죽일 수도 있었지만 그의 옷자락만 베고 난 뒤에 다윗은 다음과 같은 고백을 했습니다.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의 금하시는 것이니”(삼상 24:6). 다윗은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하나님이 직접 제거하신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그를 죽이지 않았습니다.

이 사건으로 사울이 양심의 가책을 받아 울면서 다윗이 왕이 될 것이라고 인정했지만 악신에 사로잡힌 사울은 또 다시 다윗을 죽이기 위해 하길라 산 길가에 진을 치고 있을 때 다윗은 사울을 죽이지 않고 그의 창과 물병만 기지고 나왔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또다시 “죽이지 말라 누그든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치면 죄가 없겠느냐?”(삼상26:9)또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치는 것은 여호와께서 금하신다”(삼상26:11)고 말했습니다.

다윗은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할 뿐만 아니라, 존숭하는 자세로 살았습니다. 다윗은 상황이 가장 절박하고 힘든 때에라도 하나님 말씀을 순종했습니다.

결국 때가 되매 하나님이 다윗을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가장 훌륭한 왕으로 사용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어떻습니까? 주의 종을 함부로 대하는 신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알고 보면 정말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지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 뜻이 이뤄지기를 위해서 조급증을 가진 신자들이 있습니다.


지금은 참으로 헷갈리는 시대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보시기에 어떠하냐가 아니라, 사람들 보기에 얼마나 멋있느냐? 인기 있느냐? 화려하고 웅장하냐? 그리고 얼마나 최신식이고 세련되었느냐?

오늘날 교회들을 봐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대형화를 좋아하고 그리고 작은교회 신자들 다 빼앗아가고 그리고 결국 돈 잔치하는 것 아닙니까?

우리는 지금 ‘영적 가치관의 혼돈’이라는 무서운 시대를 맞고 있습니다.


교회도 하나님 눈에 쏙 드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로, 그것은 뭐니 뭐니 해도 복음 진리를 바르게 믿고 따르는 교회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교회는 진리의 파숫꾼이 되는 교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에게 진리를 맡겨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것은 부족할지 몰라도 교회는 하나님 말씀의 진리는 풍성하게 소유하여야 합니다.

어떤 교회가 좋은 교회인가? 하나님 말씀이 당당하게 울려 퍼지는 교회입니다. 코메디 같은 세속적인 만담이나 우스개 소리를 늘어놓아 사람들을 웃겨놓고 은혜가 넘쳤다고 자랑하는 일이 있어서 되겠습니까? 교회는 사람들의 취향에 맞추는 곳이 아닙니다. 결코 사람들에게 아부하는 집단이 아닙니다.


둘째,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교회는 치유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의 현장에는 마음이 상한 사람들, 고독한 사람들, 몸이 병들어 있는 사람들, 다른 사람들과의 사회적 관계를 맺지 못하고 그늘진 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럴 때 교회는 이들을 안아줄 뿐만 아니라 문제를 해결받도록 도와주는 장소가 되어야 합니다. 여기서 하늘의 평화를 맛보고 새로운 능력을 공급받는 장소가 되도록 다 같이 노력을 해야 합니다.


셋째, 나눔과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입니다. 우리 서광교회는 작은교회입니다. 정말 어르신들이나 장애인들에게 따끈따끈한 사랑을 나누는 교회로 가고 있는 모습입니다. 얼마나 매력적입니까? 정말 작은 것은 아름답습니다. 김수정 성도가 작아도 얼마나 맵씨가 있고 아름다운 줄 아세요? 서광교회는 이렇게 저렇게 다 보배들로 꽉 차 있습니다. 할렐루야!


이런 면에서 서광교회는 비전 있는 교회요, 앞으로 가장 좋은 교회로 세워질 것입니다.

좀 더딜지라도 하나님 눈에 쏙 드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 즐겁게 하는 것이 우선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교회가 우선입니다. 세상 마지막 때가 가까워지니까 요즘 교회들의 상당수가 안타깝게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교회가 아니라, 사람을 즐겁게 만드는 인본주의 교회로 전락해가고 있습니다.


오늘 모세는 설교를 하면서 약속까지 더해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보시기에 정작하고 선량한 일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받고 그 땅에 들어가서 여호와께서 모든 대적을 네 앞에서 쫓아내시겠다고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아름다운 땅을 차지하리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으니라”(18-19절).


사람 앞에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아름다워야 합니다. 마음속까지 꿰뚫어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아름다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겉모습은 잘 보지만 속마음은 꿰뚫어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사람은 누구든지 아름다워야 합니다.


리는 지난날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했을 때는 내 마음의 욕심이 끄는 대로 끌려 다니며 살았습니다. 한 마디로 망할 짓만 하고 다닌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죄인들인 우리들을 불러주셔서 예수 십자가의 피로 씻어주시고 우리 각자의 마음 가운데 성령을 부어주셨습니다. 따라서 이제는 우리가 더 이상 옛날처럼 살아서는 안 됩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라!”(빌2:5).

 

오늘도 여러분은 속마음이 아름답습니까? 그 마음이 정말 예수님을 끝없이 닮아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아직도 사람들 눈만 의식하고 겉만 꾸미면서 세상적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아름다운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하나님 앞에서 악하고 추한 사람은 버림을 받습니다. 아무튼 하나님의 아들딸들인 우리 성들은 속사람이 아름다워야 하겠습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습니다. 얼마든지 회개하고 깨끗한 양심을 가지고 정직하고 선량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을 할 줄 안다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을 꼭 귀중한 그릇으로 쓰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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