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얘기

내가 기억하는 김대중 대통령

좁은길을 걸으며 2009. 8. 20. 10:41

 

내가 기억하는 김대중 대통령

 

(한 경상도인이 올린 글을 소담하게 올려봅니다)

 

 

조금 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들었습니다.

소름이 쫙 끼치더군요.

그나마 우리 역사상 민주주의와 가까웠던 두 전직 대통령이 모두 우리 곁을 떠나게 되다니...

마음이 많이 아픕니다.

 

87년의 인생을 사셨던 김대중 대통령의 삶은 우리 역사와 밀착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건과 의미를 남기고 떠나셨습니다.

 

내가 김대중 대통령을 기억하는 장면은... 

 

1. 1992년 대통령 선거 당시.

나는 김대중 대통령을 지지했습니다.

그래서 선거운동을 아주 열심히 했죠.

당시 경상도에서 김대중 후보를 지지하는 것은 '미친 짓'이었습니다.

선거 운동하다가 욕도 많이 얻어 먹었고,

가게에 인사하러 갔다가 재수 없다고 던지는 소금도 많이 맞았고,

심지어 그 겨울에 찬 물 세례를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도 힘들지 않았던 순간들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어떤 후보보다 훌륭한 철학을 가진 분이고 소신있는 분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해 구덕운동장에서 김대중 후보의 연설도 직접 들었습니다.

박수가 절로 나왔던 기억이 나네요.

당시 대통령으로 당선된 김영삼 대통령은 스스로 '머리는 빌리면 된다'고 했습니다.

아마 정치적 라이벌인 김대중 대통령이 신경쓰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영삼 씨가 대권을 위해 3당 합당을 하는 순간부터 '라이벌'이란 단어는 넘치는 용어라고 생각했습니다.)

 

2. 언제인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MBC 오락 프로그램에 출현하셔서

소탈하면서도 강단있는 모습을 보여줬던 기억이 있습니다.

인상좋은 웃음을 던지며 유머 감각이 돋보이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이경규가 간다' 가 아니었을까 싶은데...

 그 때 모습은 노무현 대통령의 봉하 마을 모습처럼 친근하고 푸근했습니다.

 

3. 대통령 재직 시절 '국민과의 대화'에서 보여줬던 모습도 참 믿음이 갔습니다.

 당시는 초유의 외환 위기로 국민들이 절망에 빠져 있었을 땐데,

다양한 근거와 정치적 소신으로 이 위기를 잘 헤쳐나가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구처럼 '내가 다 알아서 한다'는 느낌을 준 것이 아니라

국민들과 함께 잘 헤쳐나갈 테니 힘이 되어 달라는 낮은 자세의 당부와 이해를 요구하는 모습이었습니다.

 

4. 올해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 때 권양숙 여사의 손을 잡으면 오열하셨던 모습.

 잊을 수가 없습니다.

 '내 반쪽이 떨어져 나간 것 같다'던 말씀이 정말 와 닿았습니다.

 평생 동지를 잃었던 그 마음이 어떠했을까.

 평생 동지의 마지막 가는 길을 추모하고 싶었으나 추모사조차 할 수 없었던 그 가슴은 어떠했을까.

 당신의 몸과 마음을 많이 약해지게 했던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5. 무엇보다 가장 기억에 남는 모습은 2000년 6월.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처음으로 북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

 민족화해와 평화 통일을 다지는 '6.15 남북공동선언'을 이끌어 내신 모습은 정말 잊을 수가 없습니다.

 두 사람의 통큰 포옹이 마치 통일의 길을 여는 듯 보였습니다.

 아시아의 만델라, 노벨 평화상의 주인공이란 칭호가 딱 어울리는 모습이었죠.

 그때의 감격...잊을 수가 없습니다.

 

   민주주의와 인권, 평화, 통일을 위해 노력하셨던 김대중 대통령님.

      가신 그곳에서 평생 동지와 함께 영면하시길 바랍니다.

      대통령님의 피와 땀이 오늘 우리가 누리는 자유를 만들어 주셨다는 것 잘 기억하겠습니다.

      또한 그 뜻이 묻히지 않도록 깨어있는 시민으로 살아가겠습니다.

      김대중 대통령님의 명복을 빕니다.

 

     그리고 너무도 슬픈 건,

     많은 활동을 하실 수 있는,

     민주정부를 지향했던

     두 전직 대통령을 한 해에 잃어야 한다는 겁니다. ㅠ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