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밑에 봉숭아 어여쁜 봉숭아 그 누가 날마다 키우시나 하늘에 계시는 우리 주 예수님 언제나 쉬잖고 ....
기도하면 응답받습다 2005/08/21/주일/
(누가복음11장1-13절) 전주서광교회이송로목사
우리의 신앙생활 가운데서 늘 입에 오르내리는 말이 “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우리 가정을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실제로 아름다운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 누군가를 위해서 기도해 주는 일이란 가장 복된 삶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혹시 여러분은 날마다 기도해 주는 대상이 있습니까? 하다못해 자녀를 위해서라도 기도한다면 그것은 잘 한 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특권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자녀들만의 특권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다면 그 사람은 기도할 자격을 부여받지 못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기도하실 때에는 하나님을 향해 ‘아버지’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분이 그렇게 하신 것은 이 땅에 ‘하나님의 친 아들’의 명분을 가지고 오셨기 때문에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은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마11:25-27).
아무라도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니고, 또 아무라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은 자’가 하나님을 알게 되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놓고 보면, 여기 앉아 예배드리며 하나님께 늘 기도하는 여러분은 정말 행복한 분들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세상에는 잘 나고 똑똑하고 잘 나가는 사람들도 많은데 그들에게는 숨기시고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고 잘 난 것도 없는 우리에게 ‘나타내 보이셨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성령이 계심을 믿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무서워하는 종의 영’, 즉 ‘악한 영들’에 사로잡혀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양자의 영’, 즉 ‘예수 그리스도의 영’을 받았기 때문에 입만 열면 저절로 ‘아바 아버지여!’(롬8:15)라고 부르짖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우리 예수님은 한적한 곳을 찾아서 기도를 하셨습니다.
기도를 마치시자, 제자들 가운데 하나가 다가와서 말을 했습니다.
“주여, 요한이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1절).
아주 중요한 요청입니다. 기도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흔히 “어떻게 해야 기도를 잘 합니까?”라는 질문을 합니다.
“영어에는 왕도가 없다!”는 말이 있듯이 역시 “기도에도 왕도가 없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영어를 잘 하려면 많이 입을 열어서 많이 읽고, 또 듣고, 쓰고, 따라서 하는 것 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날 영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되어집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기도를 잘 하려면 일단 소리를 내어서 기도를 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지금까지 지은 죄를 회개하고 성령을 받기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라”(시107:9).
하나님은 기도의 문이 열리기를 사모하고 구하는 자에게 반드시 기도의 문을 열어주십니다.
기도를 아직도 잘 못 하시는 분은 기도 자체를 두려워하지 마시고 “아버지여, 나에게도 기도의 문을 열어주소서!”하면서 간구해야 합니다.
“구하라 그러면 주실 것이요”(9절) 그랬는데, 우리는 그 어떤 것을 구하기 전에 먼저 ‘기도의 문이 열리기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예수님은 제자들의 요청을 들어주셨습니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9(상)-)
예수님은 인류 역사 속에서 가장 이상적인 기도의 모범을 제시하셨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전 세계 교회들이 공통으로 드리는 ‘주기도(The Lord’s Prayer)’입니다.
우리 인류가 지금까지 수많은 기도를 드려왔지만 이 기도의 범위를 넘지 못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기도할 줄 모르는 분은 혼자서라도 주기도문을 계속 반복해서 외눌 필요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뜻을 음미해 가면서 외우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일예배 때 ‘기도의 모범’인 주기도문 부활시키려고 합니다. 회중기도를 하신 분이 기도를 다 마치고 나면, 목사가 나와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를 외치면 곧장 주기도문을 암송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가령 운동선수가 되고 싶은 사람이 처음 운동을 배운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가장 기초가 자세를 익히기 위해서 기본이 되는 동작으로 수없이 반복해서 연습해야 합니다.
기도를 잘못 배운 사람은 기도를 하다가 이상한 소리를 내는 것을 좋아합니다.
또 기도를 잘못 배운 사람은 다른 사람을 헐뜯는 기도를 합니다. 이것도 고질적인 습관이 되면 무섭습니다.
기도 할 때 특별히 조심해야 기도의 두 가지 태도는 외식과 중언부언입니다. 진정한 믿음과 신뢰 없이 형식 적으로 드리는 기도는 하나님께 열납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기도를 가증하게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온 맘과 뜻과 정성을 다해서 전심전력해야 합니다.
우리는 올바른 기도를 드리기 위해서 우리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의 모범인 주기도문을 깊이 이해하고, 그 원리를 따라 기도하는 법을 잘 배워야만 합니다.
그런데 참으로 감사하는 것은, 하나님은 우리의 이런 기도를 다 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도 ‘참회의 기도’를 드렸는데, 하나님은 우리의 진실한 맘을 받으셨을까요. 아니면 안 받으셨을까요?
만일 안 받으셨다면 허공을 치는 기도를 드렸다는 얘기가 될 것입니다. 만일 그런 기도를 드렸다면 매우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알아야 할 것은 다음과 같은 태도로 기도하면 받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지 않거나 의심하는 태도로 기도하면 듣지 않으십니다.
?중언부언하거나 외식적인 기도는 받지 않으십니다.
?형제를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기도하면 받지 않으십니다.
?죄악을 그대로 품고 하는 기도는 듣지 않으십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15:7).
이 말씀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놓여 있을 때에 응답이 있다는 것이며, 또한 주님의 뜻대로 구해야 응답이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말씀은 아무리 우리가 위의 내용을 잘 알고 있다 해도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응답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한 예를 들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제목은 ‘강청하는 기도’에 대한 교훈입니다.
어떤 사람 집에 한밤중에 영행 중에 있는 친구가 찾아왔는데, 대접할 것이 없었습니다.
너무나 늦은 밤인지라 그때서야 요리를 해서 대접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시간이 요구되었고 대접할거리가 마땅치가 않았습니다.
요즘 세상 같으면 냉장고 있는 것 꺼내서 전자렌즈에다가 금방이라도 데워서 대접하면 되겠지만....
그래서 한밤중에지만 염치 불구하고 깊이 잠이 들었을 만도 한 데 찾아가서 문을 두드렸습니다.
“친구여, 떡 세 덩이만 빌려주게나! 이 밤에 갑자기 여행 중에 있는 친구가 찾아와서 그러네!”
잠자고 있는 친구는 일어날 생각도 안 하고 “왜 나를 괴롭게 하는가? 문이 이미 닫혔고 애들도 다 잠자리에 들었는데 일어나 줄 수가 없네!”
그런데 이 친구는 계속해서 문을 두들겼습니다. “여보게, 미안하네 그렇지만 갑자기 멀리서 온 친구가 너무나 시장해서 그러네!”
그 친구는 “이렇게 있다가는 잠도 못자겠구나!” 싶어서 일어나 떡을 빌려주었다는 얘기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비록 벗됨을 인하여서는 일어나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강청함을 인하여 그 소용대로 주리라!”(8절).
여기서 말하는 ‘강청’이라는 말 속에는 ‘끈기’라는 뜻이 들어갈 수 있는 용어입니다.
그렇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말씀하시고자 한 것은 “낙심하지 말고 줄기차게 매달리라!”는 것입니다.
##[살든지 죽든지 뜻대로 하소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얼마나 열심히 기도하고 있습니까?
기도의 맛을 아는 사람은 기도하지 않고는 못 배깁니다. 그러나 아예 기도의 체험이 없는 사람은 겨우 밥 먹을 때 빼놓고는 기도하지 않습니다. 아예 기도도 하지 않고 밥 먹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시간을 내서 기도해야”합니다. 예수님은 기도하시기 위해서 제자들보다 빨리 일어나시기도 하셨고, 또 하루 일과를 다 마감하시고 홀로 남으셔서 온 밤을 세워가며 기도하시기도 하셨습니다.
우리는 기도하기 위해서 시간을 내야만 합니다.
“기도할 시간이 없다!”는 사람은 잠도 자지 말아야 합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너무나 바빠서 계속 굶고 계시는 분이 계십니까? 아니면 한 숨도 안 주무신 분이 계십니까? 바쁘니까 숨쉴 새도 없습니까? 정말 숨을 안 쉬면 어떻게 됩니까? 이런 사람은 죽을 시간이 없어서 못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 핑계입니다.
당장 어디가 아프면 다 제쳐놓고 병원에 입원할 수밖에 없는 인간입니다.
기도는 ‘영적인 호흡’이라고는 말이 맞습니다. 기도 안 하면 영적으로 죽습니다. 마귀와 싸워서 승리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기도하기 위해서 시간을 낼 뿐만 아니라, “시간을 드리자!” 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날 ‘기도의 능력’을 받습니다. 그때부터는 마치 자동차 시동이 걸리면 잘 굴러가는 것처럼 우리 인생 전체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잘 굴러갑니다. 그때부터는 기도하지 말라고 해도 기도(祈禱) 안 하면 답답하니까 기도 안 하고는 못 산다는 말이 나옵니다. 모두가 그렇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예수님은 9-13절까지에서 기도하면 반드시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들으시고 응답하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 하나, “기도만 하라!”는 것입니다.
?Ask(구하라;아이테이테=요구하다, 요청하다)
“구하라 그러면 주실 것이요!”
자녀들은 부모에게 청구서를 내놓습니다. 내놓을 때 부모님이니까 당연히 주실 줄로 알고 말을 꺼냅니다.
그러면 부모님은 “알았다!”라고 하시면 그 자체로서 결제(승인)가 난 것입니다.
?Find(찾으라;제이테이네=원하다, 바라다)
“찾으라 찾을 것이요!”
잃어버린 드라크마를 찾듯이 눈을 크게 뜨고 구석구석까지 쓸고 샅샅이 뒤지며 찾아야 합니다. 집안 어디엔가는 분명히 그것이 떨어져 있을 것입니다.
?Knock(두드리라;크류에테=톡톡 두드리다, 치다)
“문을 두르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라”
집안에 사람이 있습니다. 안에서 인기척이 들리면서 ‘삐거덕!’ 하고 문을 열어줄 때까지 두들겨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주실 때까지 구하고, 찾을 때까지 찾고, 열릴 때까지 두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을 ‘기도의 끈기’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러면서도 우리의 노력을 요구하십니다.
특히 우리는 기도 가운데서 ‘비전’을 보게 된다면 바로 그 비전이 이루어질 때까지 구하고 찾고 두드리며 끈질긴 노력을 가해야 합니다.
D.A Mayes는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에 뿌리를 둔 기도로 천국을 향하여 세상을 들어올릴 수 있다.
하늘의 보좌까지라도 세상을 들어올릴 수 있다.
중재자들이여, 여러분의 기도로 세상을 에워싸라!
기도는 어떠한 물질적인 힘과 같지 않은 강한 힘을 갖고 있다. 기도로 천국까지 밀고 올라가라!
기도만이 푸른 창공을 관통하여 여러분의 주장을 하나님께 전해 드릴 수 있다."
기도에는 반드시 응답이 있습니다. “주실 것이요, 찾을 것이요, 열릴 것이니라.” 이것은 응답에 대한 주님의 약속입니다.
약속 믿고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일생은 물론, 교회가 새로워지고 나라가 변하고 가정이 행복해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