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성한 감사생활로 2006/06/26/주일/
(빌립보서4장10-23절)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감사할 줄 아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인간이기에 말입니다. 감사라는 것은 이미 받은 선물(은혜)이나 복에 대한 고마움의 표현입니다.
한 마디로 은혜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 마음에 감사가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항상 불만, 불평으로 가득 쌓여 있습니다.
감사는 좋은 곡식과도 같아서 그 삶을 더 풍성하게 만들어주지만, 원망으로 가득 찬 마음은 잡초로 우거져 있어서 그 인생 전체를 병들게 하고 찌들게 만듭니다.
바울 사도는 복음을 전하다가 로마 감옥에 감금이 된 상태에서 마게도냐에 있는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 편지를 쓴 이유 중에 하나가, 빌립보교회 성도들이 자신의 선교활동을 돕기 위해서 아낌없이 헌금해 준 것에 대한 감사를 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이야기가 오늘 본문 10-19절까지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1. 나는 기뻐한다.
여러분이 잘 아시다시피 빌립보서는 기쁨의 서신입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4:4).
그는 다시 10절에서 “내가 주안에서 기뻐함은....”이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지정한 기쁨, 시들지 않는 보람과 감사와 행복을 안겨주는 기쁨은 ‘예수 안에서’ 누리는 기쁨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일에 있어서나 우선 예수 안에 참된 기쁨, 참된 행복, 참된 감격을 누릴 줄 아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진실한 성도라면 주변의 환경에 좌우되지 않고 복음을 통해서 누리는 감격이 곧 마음의 기쁨으로 나타나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여기에서부터 여기서 흘러나오는 것들이 찬송이요, 감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종종 이런 기도를 드릴 필요가 있습니다.
“주 예수님, 나에게 기쁨을 회복시켜 주시옵소서!”
바울 사도는 옥중에 있으면서도 무엇이 그렇게 기뻤을까요?
그는 밖에 있는 성도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특별히 빌립보교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빌립교 교회가 어떤 교회입니까?
바울 사도가 2차 선교여행을 통해 유럽 땅에 최초로 세워진 교회입니다. 게다가 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난 후 ‘진실한 순종과 헌신’을 드릴 줄 아는 아름다운 교회였기 때문입니다.
이 교회는 작고 매우 가난했습니다. 그렇지만 매우 관대하고 헌신적인 교회로서 비전있는 교회였습니다.
그들은 바울 사도가 복음을 전해 준 고마움을 잊지 않고 바울의 선교를 한 두 차례 힘껏 도왔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혀있다는 소식을 듣고 또 풍성한 헌금을 보내왔습니다.
바울은 이런 사실 앞에서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간구한다”(빌1:3,4)고 했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자신의 선교를 위해서 베푼 호의에 대해 감사하면서 10-19절의 얘기를 이어가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2. 나는 자족한다.
“네가 궁핍함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서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11절).
감사와 기쁨이 그냥 나오지 않습니다.
그는 받았기 때문에 감사 한다 라기보다는 어떤 형편에서든지 ‘자족한 마음’ 때문에 감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자족’이라는 말은 헬라어 ‘아우탈케스’라는 말인데, 영어에서는 'self-sufficient'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만족하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어떤 자만심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그 뒤에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12절).
그는 빌립보교회 헌금을 보내오든지 안 보내오든지 얼마든지 만족하며 지낼 수 있는 ‘자립정신’이 있었습니다.
돈이라는 것은 많으면 많은 대로 좋은 것이지만 그러나 소인은 많으면 죄짓고, 교만해지고, 과신하지만, 없으면 기죽고, 죽을쌍이 되고, 불평하고 불만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는 어떤 형편에서도 만족하며 ‘주님 안에 있다!’는 것으로 기뻐하고 감사하는 삶의 자세 곧, 중용을 잃지 않았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주면 주는 대로 받고 안 주면 없는 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저는 제 아내에게는 “나 돈 떨었소!”라는 말을 간혹 가다가 합니다.
아무튼 제가 농촌 교회 없는 마을에 들아가서 3년 동안 교회에서 받은 생활비라는 것이 없었지만 그래도 늘 자족하면서 살아왔던 아름다운 추억이 있습니다.
그것은 현재의 서광교회를 담임하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럴지라도 우리 성도들은 빌립보교회 성도들처럼 이 목사의 쓸 것을 공급하려고 애쓰는 모습일 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가정 더 풍성한 것으로 채워 주실 줄로 믿습니다.
3. 나는 할 수 있다.
바울은 “나는 기뻐한다”, “나는 자족한다”고 한 그는 이제 “나는 할 수 있다(I can do)” 신앙을 선언합니다.
이 성경 한 절이 수많은 기독교인들에게 힘을 주었습니다.
“나는 할 수 있다!” 여기서 끝나면 인본주의가 되겠지만, “내게 능력 주시는 자(d)수)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신본주의입니다.
이 고백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내 배후에는 예수님이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 투철한 신본주의 신앙의 바탕 위에서 그 험난한 개척선교를 감당해 냈던 것입니다.
우리의 진정한 백그라운드(background)는 누구입니까?
‘오직 예수’이십니다.
[오직 예수! 오직 믿음! 능치 못함 없겠네. 오직 믿음~! :ll ]
보십시오. 하나님은 빌립보교인들을 통해서 또 쓸 것을 공급해 오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바로 빌립보교회는 바울에게 있어서 천사처럼 쓰임을 받았습니다.
“내(바울)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도...”(15절).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도...”(16절).
바울의 쓸 것을 공급해 주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우리 사광교회의 비전을 새롭게 하는 일에 마음껏 헌신하시기를 바랍니다.
서광교회가 할 일은 너무나 많습니다.
우선 교회를 부흥하려면 그만큼 물질적인 부분도 투여가 되어야 합니다.
전도하는 일, 일꾼을 세우는 일, 그리고 교육하는 일에 보다 많은 투자가 필요합니다.
나아가서 선교사님을 돕는 일에, 개척교회를 세우는 일에, 지역사회를 섬기는 일에 상당한 투자가 이뤄져야 합니다.
이 일을 위해서 헌신해야 할 사람은 바로 성도 여러분들입니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은 “할 수 없다(I ca not....)”를 말할지라도 우리는 ‘능력의 그리스도!’를 바라면서 “할 수 있다!”라고 말합시다.
그 때 우리 주님께서는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말씀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서는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이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제공해 주실 것입니다.
4. 나는 풍족하다.
바울은 그 마음에 소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성도들이 잘 되는 것입니다.
17-19절의 내용이 바로 그것입니다.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과실이 번성하기를 구함이라!”(17절).
그들이 하나님께 감사의 헌금을 드렸으니 만큼 싹이 나서 ‘풍성한 열매’를 거두기를 소원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 잘 하는 성도가 얼마나 예쁜지 아십니까?
감사 잘 하는 성도를 위해서 더욱 간절한 기도가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할 것입니다.
넉넉해서가 아니라, 가난하지만 그 가난한 중에서도 늘 감사하는 생활을 끊임없이 하는 성도, 늘 선교헌금을 하는 성도를 바라볼 때 그것은 주의 종의 기쁨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결과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의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18절).
그들이 헌금을 하므로 바울은 풍족해졌습니다.
바울 개인이 자신의 재산 목록을 늘리기 위해서 받은 헌금이 아닙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하나님 나라 복음을 위해서 쓰여질 헌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부자 된 느낌으로 말을 합니다.
여러분들이 드린 헌금은 그냥 헌금이 아닙니다. 구약에 아벨이 드린 제물과 같다는 뜻으로 “향기로운 제물”이라고 했습니다.
믿음으로 드린 헌금이기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헌금”이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은 물질을 드리는 일에도 정성을 다 해야 하고 최선을 다 해야 하고 최고의 것으로 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시간도 만찬가지입니다. 놀 것 다 놀고, T.V 시청할 것 다 하고 언제 성경보고 기도하겠습니까?
[귀한 시간 바쳐서 햇빛되게 하소서!] 귀한 시간 바쳐야 하나님이 받으시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은 자투리를 원하시지 않으십니다.
마찬가지로 물질에 있어서도 나 쓸 것 다 쓰고 남은 것 가지고 드리려고 하니까 그렇죠. 먼저 하나님께 헌금할 것을 염두해 두고 딱 떼어놓고 그 나머지로 일상생활을 한다면, 이것이 습관이 된다면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우리는 이 시간 회개하는 마음을 가지고 마음을 바꿔야 합니다. 확 바꾸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바울은 빌립보교인들에게 확신을 더해 주는 메시지를 주고 있습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쓸 것을 채우시리라”(19절).
여러분은 이 문장이 아주 고상한 문체로 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바울이 ‘너희 하나님’이라고 안 하고 ‘나의 하나님!’이라고 한 것은 지금까지 자신이 선교사역을 통해서 체험한 하나님의 사랑을 강렬하게 표현하는 용어입입니다.
바로 그 하나님이 빌립보교인들이 바친 헌금이 싹이 나고 열매가 맺혀서 풍성한 결실로 거두게 될 것을 확신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근검절약을 해서 하나님께 드려진 헌금생활이 아름답게 이뤄진다면 교회도 잘 되고, 여러분의 가정도 잘 되는 축복이 따르리라고 믿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헌금 생활을 억지로 하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이유는 하나님은 “즐겨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후9:7)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 한 가지는 “심는 대로 거둔다!”는 것입니다.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고후9:6)고 했습니다.
만일에 안 심으면 아무 것도 가둘 것이 없을 것입니다.
심고 거둠의 법칙은 하나님 나라 원리에도 적용이 됩니다.
우리는 다음 주일 맥추감사절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현실만을 생각하면 드릴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을 뛰어넘어 지금까지 지내온 것이 누구의 은혜인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행여라도 여러분의 헌금이 상가 집에 부조하는 식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정말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 가장 아름답고 귀하게 보시는 헌금이 되도록 하십시오.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시원케 해 드리는 예물이 되도록 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도 여러분에게 “그 풍성한 대로 너희 쓸 것을 채우시리라”는 말씀 대로 더 아름답고 귀한 것으로 거두게 해 주실 줄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