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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적인 헌신

좁은길을 걸으며 2005. 6. 12. 08:16
 

                전적인 헌신 (commitment)           2005/06/12/주일/

                         (로마서6장12-14절)


우리 학교 다닐 때는 왜 그렇게 외우는 것도 많았는지 아무튼 교과서를 달달 외우다시피했고 음악 악보 뿐만 아니라 계명을 통달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초등학교 5학년 12월에 박정희 대통령의 칙령이 내려왔습니다.

393자로 된 국민교육헌장을 발표하고는 모든 학생들에게 외우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너나할 것 없이 다 외웠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이것을 안 외우면 집에 못 가고 남아서 외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 와서 봐도 그 내용을 보면 정말 멋진 문장으로 구성된 것과 우리 민족을 계몽하기에 적절한 표현들로 잘 짜여 있음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 을 오늘에 되살려, 안으로 자주 독립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 인류 공영 에 이바지할 때다....신념과 긍지를 지닌 근면한 국민으로서, 민족의 슬기를 모아 줄 기찬 노력으로, 새 역사를 창조하자.”

여기서 ‘이바지하다’란 말을 보게 됩니다. ‘기여하다, 도움이 되다. 공헌을 하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애국심을 가져야 하고, 또 그 애국심을 가지고 헌신하는 마음을 갖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나라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서광교회의 성도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뭔가 하나님나라와 교회를 위하여 ‘역사적 사명을 띠고’ 바로 거기에  ‘이바지해야’할 때라는 것을 깊이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바울 사도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노릇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치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사신 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먼저는, “죄로 죽을 몸에 죄가 왕노릇하지 못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죄에게 매여 있으면 결코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에 아름다운 기여를 할 수가 없습니다. 죄에게 끌려다니는 사람은 죄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진정한 헌신자가 되지 못합니다. 따라서 진정한 헌신자가 되려면 자기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고 온전히 성령께 지배를 받아야만 합니다.


다음은,  “나의 지체를  의의 병기(도구)로 하나님께 드리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드린다(헬;파리스테미;offering up)’는 말이 곧 ‘<제물을>바치다;헌신’을 뜻하는 낱말인데, ‘습관적으로 드리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헌신하는 것도 좋은 습관이 배어야 합니다.

항상 헌신하는 사람이 헌신하지 헌신을 못하는 사람은 평생을 가도 드리는 것을 잘 못하는 것을 봅니다.


71장

제목 - 내게 있는 모든것을 작사 - 벤 디 벤터 목사 1896


{내게 있는 모든것을 아낌 없이 바치네 사랑하고 의지하여 주만 따라 가겠네

주께 드리네 주께 드리네 사랑하는 구주 앞에 모두 드리네}

이 노래 작곡자는 물질만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전에 추구하던 모든 세상적인 복락을 포기 하고 몸과 마음과 뜻을 바쳐서

그리스도 예수만을 섬기겠다는 헌신의 고백이 담아 있습니다.


이런 찬송이 교회 안에 새롭게 부활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냥 머리 속에서만 맴돌다 지나가는 찬송이 아니라, 헌금 드릴 때 형식적으로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 마음 중심에 새록새록 다져져서 새로운 결단과 함께 헌신의 깊이 묻어나오는 신령한 노래로 불러져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을 가만히 보면.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신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13절)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일거수일투족, 모든 것의 모델이십니다.

우리 예수님은 우리에게 한 알의 밀알의 얘기를 들려주셨습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12:24).

과연 누가 서광교회에서 한 알의 밀이 되기로 작정하고 그 무엇이라도 헌신할 각오가 되어 있는 분이 계시다면 이 교회의 장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그런데 무엇보다도 거기에는 우리의 헌신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누가 한 알의 밀알이 될 것인가?”

이 중요한 질문 속에 “내가 한 알의 밀알이 되겠습니다!”라고 다짐하며 손을 들 수 있다면 우리 서광교회의 장래는 아주 밝다 하겠습니다. (한 번 손을 들어봅시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무슨 일이 있어도 서광교회를 지키고 교회부흥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바치며 교회에 유익하다고 하면 내 가장 소중한 것이라도 주님이 원하신다면 그렇게 헌신할 수 있겠습니까?


교회 안에는 두 부류의 헌신자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12제자처럼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헌신했던 제자들입니다.

이 분들은 말씀을 전하는 일과 기도하는 일에 헌신된 자들입니다. 그래서 오늘날로 치자면 목회자 그룹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앞에 나와서 말씀을 들었지만 생활의 터전으로 돌아가서 일을 하고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입니다. 거기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사람들입니다. 평신도 그룹입니다.


이 둘 어느 것이 더 소중하고 덜 소중한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특별히 세상에 나가서 사업을 하거나 직장을 다니는 사람은 그 현장에서 빛과 소금으로 나타나져야 합니다. 그냥 빛과 소금이 아닙니다.

양초는 자기 자신을 태우면서 빛을 밝히듯이, 소금은 녹아져서 간이 배듯이 ‘자기 희생’이 뒤따라야 합니다.

나아가서 섬기는 교회에서는 몸으로도,  물질로도 많은 헌신을 해야 합니다.

이 둘이 잘 조화를 이룰 때 제대로 된 헌신자로서 귀하게 쓰임을 받는 ‘의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런 분이 교회 안에 있다면 성직자보다 더 존귀함을 받는 훌륭한 성도 일 것입니다.

바로 이런 평신도 헌신자들로 서광교회가 한 분 한 분 채워지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는 참으로 좋은 노래를 하나 배우고 또 다음 주일에도 불러봅시다.

(즐거운 우리 교회)

이런 교회 만들어가는 데에 서로가 앞장을 섭시다.


바울은 빌립보교회를 향해서 이렇게 헌신을 드려싸고 말합니다.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 (빌2:17,18)

여기서 ‘관제(스펜도마이)’란 말은 ‘붓다’에서 나온 말입니다.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물을 바칠 때 그 위에 포도주를 붓던 의식을 가리킵니다.

빌립보교인들은 예수를 믿고 영접한 뒤로 ‘믿음의 제물과 섬김’이라는 헌신으로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갔습니다.

바울 자신은 이 헌신 위에 자신을 포도주처럼 부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싶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순교자적인 각오를 필역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 얼마나 멋진 각오입니까?


{날 대속하신 예수께 내 생명 모두 드리니 늘 진실하게 하소서

내 구주 예수여!}


허드슨 테일러는 중국선교를 위해 헌신한지 14년이 지난 어느 날 (1867년 8월) 그는 중국 항주에서 그의 사랑하는 딸 그레이스와 아들 노엘풍토성 설사병으로 잃어버렸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의 사랑스러운 그레이스야! 아침에 깨어나면 가장 먼저 달려와 인사하고, 낮에는 낮대로 밤에는 밤대로 우리 귀에 들려주던 너의 귀여운 목소리를 듣고 싶구나!

아빠가 산책하러 갈 때 너를 데리고 가면 너는 아빠 옆을 잔걸음으로 졸랑졸랑 따라오곤 했었지!

그 생각을 하니 고통이 고동치듯 또 다시 북받쳐오는구나!

그 귀여운 입술로 속닥거리던 사랑스런 말소리를 두 번 다시 들을 수 있을까?

네 밝은 두 눈의 반짝이던 눈빛을 두 번 다시 볼 수 있을까?

하지만 아빠는 너를 잃은 게 아니란다. 비록 너를 다시 되돌려 가질 수는 없어도....

하늘 정원사가 오셔서 장미를 꺽으셨으니...!


그 일이 있고 난 2년 후 1869년 7월 20일 화요일, 허드슨 테일러의 아내 마리아결핵성 장염으로 또 다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중국선교를 시작한지 16년 그녀와 결혼하지 12년만에. 이 때 허드슨 테일러는 햐얀 상복을 입고 8명의 중국인들이 메고 가는 상여를 따라가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하나님, 사랑하는 마리아를 제게 주셨던 것을 감사드립니다.

저희들이 중국에서 함께 했던 12년 반의 행복한 시절들을 인하여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이제 아버지 계신 축복 그 축복된 곳에서 안식을 위하여 그녀를 데려가심을 감사드립니다.

저는 아버지의 일에 다시금 새롭게 헌신합니다. 아멘.”

사랑하는 가족을 모두 잃고서도 하나님의 일에 온전히 헌신한 허드슨 테일러는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중국 땅의 모든 곳을 구석구석 찾아나서며 중국의 영혼들을 진정으로 사랑했던 사람’이었다.

테일러는 1905년 6월 3일 그가 마지막으로 중국을 방문하였을 때, 그가 그토록 사랑하던 중국 사람들의 땅에 뼈를 묻었습니다.


그는 후세의 모든 선교 헌신자들에게 큰 도전을 주었던 믿음선교의 아버지(Faith Mission Movement)로 남았습니다.


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와 주님의 몸된 서광교회를 위해서 드릴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오늘 우리는 그냥 집으로 돌아가지 말고 정말 헌신을 다짐하고 돌아갑시다.

여러분의 헌신이 다짐이 진실하게 되어진다면 서광교회의 역사는 새롭게 펼쳐질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온전한 헌신을 받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온전히 몸을 드리는 헌신을 원하십니다.

전적으로 헌신된 신자가 나올 때 이 교회는 이 교회는 불꽃처럼 타오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죄의 종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종들입니다.

그렇다면 그분을 위해서 드려야 될 진실한 헌신이 여러분의 손과 발에서 묻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아낌없이 드릴 수 있겠노라고 다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무엇이라도 맡겨만 주십시오. 죽도록 충성하겠습니다.”

이런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결국 여기에는 금생에 있어서 백배를 받고, 내세에 있어서 영생과 하늘의 큰 상을 받는 성도가 되리라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