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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려라 깨!

좁은길을 걸으며 2005. 5. 29. 22:07

 

                            에 바 다                       2005/05/29/주일/

                       (마가복음7장31-37절)


수님이 가시는 곳에는 눈이 뜨이고 귀가 열리고 모든 것이 바뀌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은 중풍병자도, 38년된 병자도, 열 두해 동안 혈루증으로 고생하던 여인도, 나면서부터 소경으로 있던 자도, 열 명의 한센씨병도 , 귀신들린 사람도 깨끗이 고쳐주셨습니다.

우리는 그냥 스쳐지나가며 남의 일처럼 생각하기도 쉽지만 그 수혜를 입은 당사자들에게 있어서는 새로운 세상을 맛보는 놀라운 감격이 아닐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마가복음을 보면 예수님의 치유 사역 가운데 사용하신 두 마디의 아람어로 된 메시지가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달리다굼!’ 이 말은 ‘소녀야, 일어나라!’라는 뜻입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실 때 하신 명령입니다. 사람들은 설마설마 했는데 예수님께서 죽은 아이를 살리신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에바다!(ephphatha!)’입니다. 에바다! 무슨 뜻입니까?

‘열리라!(Be opened!)’는 뜻입니다.

오늘의 설교의 중점은 여기에 둘 것입니다.


예수님은 두로, 시돈, 데가볼리 등을 순방하며 전도를 하시다가 갈릴리 호수가로 오셨습니다.

이 때 귀먹고 말 못하는 벙어리 한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사람을 데리고 나왔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이런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장애우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그는 지금까지 불행한 세상을 살아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귀가 뚫리지 않으면 말도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그는 다른 사람들과 의사소통이 안 되니까 주로 닫혀진 공간에서 혼자 있다 보니 성격마저 어눌해졌습니다.

보생각해 보십시오. 보통 사람들처럼 듣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니 얼마나 답답하고 막힌 세상을 살았을까? 짐작이 가지 않습니까? 그에게는 불행의 울타리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스스로의 불행의 울타리를 쳐놓고 답답한 세상을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울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어느 때보다도 많아졌습니다.

특히 예수 믿지 않는 비신자들이 주로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귀가 있지만 듣지 못하고 입이 있어도 말을 못하는 벙어리 인생입니다.

이 사람들이 어디로 가야 풀릴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그들을 그렇게 놔두면 안 됩니다.

정말 예수님 앞에 나오면 해결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들을 예수 앞으로 데리고 와야 합니다.


그래도 이 벙어리에게 있어서 다행인 것은, 이곳에 예수님이 찾아와 주셨기에 그들은 이러한 기적을 맛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그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착한마음을 가진 이웃사람들이 있었기에 이런 일이 가능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선한 일을 하고자 할 때에 무엇보다도 손발이 잘 맞아야 합니다. 다른 말로 코드가 맞아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는 서로 손발을 잘 맞춰서 예수님을 명령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먼저 깬 영혼, 즉 열린 사람이 될 때에 가능한 일입니다.


예수님은 데려온 벙어리를 저만치 따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손가락을 그의 양귀에 넣고 침을 뱉어서 그의 혀에 손을 대셨습니다.

그런데 과연 침에는 무슨 약효라도 있었을까?

그분은 말씀 한 마디로도 충분히 낫게 하실 수 있는 분이 아닐까?

맞습니다. 충분히 그렇게 하고도 남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의사가 사용하는 약 중에는 플라시보(placebo·가짜약)란 것이 있어서 특별한 경우에 사용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 효과는 대단하다고 합니다.

이 약은 사실 병이 없는데 본인은 있다고 믿는 경우에 사용합니다.

그 환자는 본인은 병이 있기 때문에 꼭 약을 먹어야 낫는다고 믿을 때 의사는 비타민 등을 치료약이라고 속여 환자에게 투여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환자가 그것을 먹고 나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그런 효과를 노리신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아무튼 예수님께서도 병자나 장애우를 치료하실 때 간혹 다양한 방법을 쓰셨다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야고보선생도 이렇게 말씀한 적이 있습니다.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 것이니라”(약5:14).

그런데 이런 경우에 기름이 고대 의약품 중의 하나였기 때문에 약을 쓰면서 기도하라는 말씀으로 해석하기도 하고, 또 어떤 학자들은 믿음을 촉진하기 위해 기름을 바르며 기도한 것이 아닐까라는 해석을 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정확한 정의를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해야 할 일도 있지만 환자나 장애우들에게 특별히 위로나 도움이 될 수 있는 최선책이 무엇일까 생각하면서 사랑을 가지고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사랑이 보약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오늘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사랑을 가지고 찾아가서 기도해 주는 것보다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때로는 약을 지어줄 수도 있습니다. 아픈 자리에 손을 얹고 기도해 줄 수 있습니다.

아니면 드실 수 있는 음료수나 과일을 가지고 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그들에게 가지고 가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복음을 가지고 가는 일입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복음을 잘 들려줄 수 있습니다.

내가 어제 대학병원에 최낙호씨에게 심방했을 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이 도와주실 것입니다. 다만 이 기회에 꼭 예수믿기로 결심하십시오.

그러면 앞으로의 인생이 환하게 열릴 것입니다.”

바로 에바다의 역사가 일어날 것을 얘기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하늘을 우러러 보시며 탄식하셨습니다.

많은 학자들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에 죄가 들어왔기에 이렇게 비참해진 인생의 모습을 바라보시면서 연민을 느끼신 것이라고 말합니다.

저도 거기에 동감을 합니다.

우리 주님의 연민은 오늘 세상에서 시달림 받는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안다면 왜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앞으로 나오지 않으려 하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이제 단 한 마디의 명령을 하십니다.

‘에바다!(열리라!)’는 것입니다.

“빛이 있으라!” 하신 하나님께서만 하실 수 있는 명령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 한 마디에 곧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귀가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혀가 풀리니까 말이 분명해졌습니다. 정상인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는 비로소 불행의 울타리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오늘 본문의 이야기는 그때 그 이야기로 그쳐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서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한 사건으로서 보여주신 이적이었습니다.

귀가 열리고 혀가 풀리는 놀라운 이적은 어둠의 세력 가운데 있는 죄인들이 가져야 할 종말론적인 구원을 의미합니다

옛 선지자의 예언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사 35:5~6, “그때에…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며…벙어리의 혀는 노래하리니”

오늘 우리는 예수님을 직접 눈으로 보지는 못하지만 예수님의 이름이 선포되는 곳에 성령님이 함께 계셔서 에바다의 역사를 일으키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나 자신에게도 에바다의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성령받아서 속사람이 새롭게 되고 영의 눈이 열려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에게 성령 안에서 Open the mind(heart)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의식이 영적으로 트여서 말이 분명해지고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는 확실한 사람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주변에 영적으로 벙어리된 사람들을 주님 앞으로 인도하는 능력있는 신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들도 예수님 앞에 나오면 예수님이 고쳐 주셔서 귀가 열리고 입이 열리기를 기도합시다.

답답한 인생을 살던 그들에게 우리 주님이 그 마음 속에 찾아오셔서 ‘에바다!’하실 때에 막힌 귀가 열리고 혀가 풀려서 기도가 나오고 간증이 나올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처럼 행복한 마음으로 인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육체적인 장애보다도 훨씬 더 불행한 장애가 있다면 그것은 정신적 장애, 영적인 장애입니다.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합니다.

누가 그들을 예수 앞으로 인도해야 하겠습니까?


예수 앞에 나오기만 하면 우리 주님은 그에게 에바다!~’명령하실 것입니다. 이 명령을 듣는 이마다 귀가 열릴 것입니다. 가슴이 열릴 것입니다. 삶이 새롭게 될 것입니다. 불행의 울타리를 걷어차고 멋지게 인생을 살아가는 행복자가 될 것입니다.



                     에 바 다         -작자미상의 시(詩)-


“나는 열 개의 마을로 이루어진 데가볼리 마을에 살고 있었지요.

눈을 뜨면 맑은 햇살과 고은 새들을 보았지만 이 세상이 소리는 하나도 들을 수 없었지요.

어머니의 따뜻한 음성과 형제들의 고운 노래 소리도 들을 수 없었지요!”

이렇게 시작합니다.

이 시의 중간에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나의 삶은 절망이었지요. 어느 날 유난히 햇살이 창문을 비집고 들어오는 날 친구들이 나에게 몰려왔지요.

그리고 다짜고짜 나를 어디론가 데려갔지요. 친구가 이렇게 손으로 말했지요.

‘너도 말할 수 있어. 너의 좌절을 희망으로 바꿀 거야. 들을 수 있어. 들을 수 있어! 들을 수 있다고!’

‘미친놈들, 말할 수 있다고 나를 놀리는 거냐?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이랬어. 나는 병신이야. 제발 그대로 놔줘!’


그 때 내 눈 안에 누군가를 볼 수 있었지요. 그렇게 부자처럼 보이지도 않았고 훌륭한 가문의 사람처럼 보이지도 않았고 그러나 무엇인지 힘이 있어 보였지요.

막연히 이런 생각이 들었지요. 그래 이 분이 내 귀를 열고 내 입을 열어 주실지도 몰라.

그분은 나를 보시자마자 나를 따로 불러 세우시고 조용히 아무도 몰래 왼손을 들어 나의 귀를 막으셨습니다. 어떠한 따스함이 일어났어요.

그리고 오른 손을 들어 침을 묻히시고 내 혀에 그 손을 대셨지요.

그리고 무엇인가를 말씀하셨지요. 하늘을 우러러 보며 탄식하시며 눈물을 흘리며 ‘이 닫힌 세상이여, 이 막힌 사람들이여, 이 사랑치 못한 사람들이여, 답답한 형제들이여, 귀가 있어도 말씀을 못 들으며, 입이 있어도 전하며 찬양치 못하는 자들이여, 닫힌 마음을 닫힌 가슴을 닫친 입을 열어라 에바다!,


천지가 깜깜해지고 온 몸이 부르르 떨리더니 귀에 막힌 것이 열리고 입에 맺힌 것이 풀렸지요. 아~아~아~아~ 나의 말은 탄식을 토해놓고 그렇게 그리던 말을 하며 그렇게 그리던 소리를 듣게 되었지요.

할렐루야! 위대하시고 전능하신 주 당신을 찬양합니다. 나의 찬양을 받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