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라는 나라야말로 보물섬 또는 보석의 섬이다.
드디어 스리랑카른 찾아왔다
스리랑카에 무척 오고 싶었다. 그냥 놀러온 게 아니다.
1993년 대전엑스포에 참여한 스리랑카인들이 전통 춤을 추면서 스리랑카를 알리고 있었다.
그 매력에 반한 나는 언젠가는 꼭 스리랑카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후 약 25년만인 2018년 1월 9일에 스리랑카 코롬보에 도착했다.
무조건 낭만적인 생각 때문에 스리랑카에 온 것이 아니라 스리랑카의 현실을 분석해 보고 미래를 조망해보고 싶어서 이렇게 먼 길을 날아서 왔다.
인구 2천1백 20만명 이상을 가진 스리랑카는 인도의 눈물이라고 불리는 섬나라로 통하지만 내 눈에는 보석의 섬이다. 실제로 사파이어 등 각종 보석을 가장 많이 세계로 수출하는 나라이다. 포르투칼, 네델란드의 지배를 거쳐 영국의 지배를 받을 때만 해도 실론이라고 불리었다. 1948년 2월 4일 독립이 되고 국명이 스리랑카로 바꿨다. 수도를 콜롬보로 알고 있겠지만 세상 가장 긴 이름을 가진 스리자야와르더네푸라코테가 행정수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 경제수도는 콜롬보이다.
나는 일주일 동안 머물며 관광지를 찾아다니는 것보다는 스리랑카 사람들을 접하면서 스리랑카를 배우고 싶다.
다음에 기회가 되는대로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한 바를 올려보려고 한다.
나는 이 나라에 오기 위해서 하노이에서 출발하는 저가항공 에어아시아를 예약했다. 왕복 35만원이면 싼거다고 느껴졌다.
첫날 밤중에 도착할 것 같아서 호텔을 미리 예약했다. 익스피디아 사이트를 통해서 2만원 짜리를 예약했다.
하노이에서 가는 시간이 쿠알라룸푸르까지 3시간 30분 걸렸다. 여기서 경우하니까 대기하고 있다가 두 시간 후 비행기를 바꿔타고 콜롬보를 향해 갔다.
다행인지 내 옆죄석 두 자리가 고스란히 비어 있어서 누워서 잘며 갈 수 있었다. 간혹 이런 경우를 만나면 은근히 기분이 좋다.
콜롬보공항은 베트남에 비해 훨씬 후졌다는 생각이 든다. 내리지마자 매는 가방만 있으니까 밖으로 나와 로컬전화를 싸용하려고 유심카드를 12불 주고 구했다.
그리고 밖에 나가니 콜롬보 시간으로 밤 11시가 가까와졌다. 눈에 얼른 띠는 버스가 없어서 현지인에게 물어보니 바로 옆에 있는 낡은 버스를 타라고 가르쳐 주었다. 늦은 밤이라서 무조건 그 버스를 탔는데 600루피를 달라고 했다.
알고보니 턱없이 바가지를 썼다. 이게 바로 스리랑카 행태로구나 생각했다. 알고보니 200루피 안 쪽으로 해결되는 것을 처음 여행이라서 이렇게 바가지를 썼다.
차도 더러운데 늦게 출발해서 콜롬보까지 오니까 1시가 넘었다. 가다 쉬고 가다 쉬고 시내버스 개념으로 다니는 차였다. 그래도 호텔 가까운 곳이 종점이라서 문제는 없었다.
호텔을 찾아들어가보니 내 방이 따로 없었다. 복도형 한 쪽에 2층으로 된 침대가 있는데 그 중에 한 방을 주면서 화장실과 목요실은 공동이란다. 사실 이 정도인지도 모르고 방을 예약햇단 말인가!
그러나 5시간 정도만 자면 아침인데 빨리 샤워나 하고 자자 하고 첫 날밤을 이렇게 해서 맞이하게 되었다.
그래도 하나님께 감사가 나왔다. 잘 도착하게 해 주셨고 꿈에 그리던 스리랑카 땅을 밟게 해 주셨으니 얼마나 큰 영광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