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바라시는 가정
성경/에베소서5장 22절-6장 4절 2010/06/27 이송로목사
우리가 말하는 사회라는 것은 그 구성의 기본단위가 가정에서부터 생겨났다. 국가와 교회가 있기 전에 하나님은 가정을 주셨다.
가정의 소중성이라는 것을 의식하고 살든지 그렇지 않든지 간에 우리는 가정의 구성원이면서 동시에 부모나 자녀라는 틀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남녀가 사랑하면 거기서 반드시 자녀가 태어나게 되어 있다. 곧 그 자녀들은 거기서 사랑과 행복을 배우게 되고 정의와 친절과 인내를 배우게 된다.
어머니의 중요성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아버지의 중요성 역시 매우 큰 것이다.
어떤 군인에게 아들이 있었는데, 아들의 행동이 망나니 같았다. 하루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했다.
“내가 그 동안 너의 행동을 참고 보아왔지만 이제 더 이상은 안되겠다. 내가 너를 산에 데려가 크게 혼내겠다”
아버지는 아들의 손을 잡고 산 속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산길이 하도 험하니까 아들이 말했다.
“아빠.좀 쉬었다 가요.” “이 놈아 쉬기는 뭘 쉬어.” 아들은 계속 쉬어가자고 사정했다. 그래서 잠시 쉬는데 아들이 말했다.
“아빠하고 등산하니까 참 좋네요.” “이 녀석아. 조금 더 가면 크게 혼날건데 좋긴 뭐가 좋아.”
“아빠랑 등산하는 것이 처음이예요. 혼나러 가는 길이지만 이렇게 좋을 수 없네요.”
곰곰 생각해보니 아들과 등산 한번 간 적이 없었다. 그는 그만 마음이 풀려서 그 자리에서 눈물을 흘리고 아들과 산을 내려오고야 말았다. 아버지와 손잡고 가는 길은 항상 감사하고 행복할 뿐이다.
때로는 가정에서 큰소리가 나기도 하고 갈등을 겪기도 하지만 가정은 하나님이 주신 최초의 선물이기도 하다.
그러기 때문에 가정을 버리는 자는 스스로 불행을 자초한 결과가 될 수밖에 없다.
사실 오늘날 수많은 가정들이 이미 깨어지거나 아니 방축에 물이 새듯이 금이 간 가정들이 많이 있다.
그것은 알고 보면 우리 하나님이 주신 선물을 시기하고 미워하는 마귀의 공작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상처난 가정들을 치유하시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개인 뿐만 아니라, 가정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
따라서 진실하게 예수를 믿는 가정은 가정이 회복되는 것은 물론 행복한 가정으로 바뀔 수밖에 없다.
바울 사도는 오늘 본문에서 우리 모든 가정들이 그리스도 중심적인 가정이 되기를 마음으로 편지를 썼다.
부부관계가 그래야 하고, 부모, 자녀관계가 그러해야 하며, 또한 상전과 종(종업원) 사이에도 그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본문 가운데서 계속적으로 등장하는 말은 ‘주께’, ‘그리스도에게’, ‘그리스도께서’, ‘주안에서’라는 말이다.
1.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고 존경하라.
가정에서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한다? 무슨 전근대적인 얘기를 하고 있느냐고요?
그렇지 않다. 하나님의 창조의 원리에 따르면 하나님이 남자를 먼저 지으시고, 동시에 ‘여자의 머리’로 지으셨다.
그러니까 여성이 남성의 머리 꼭대기에 서면 가정은 반드시 불행하게 되는 것이며, 아니며 ‘기죽은 남자’로 어깨가 쑥 내려간 남자가 되어버린다.
22절을 보라.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22절).
신앙 좋은 여성이라면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를 뿐만 아니라, 그분의 명령에 복종할 마음으로 충만해 있을 것이다.
바로 자기 남편에게도 그렇게 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불행한 일이 되는 것이 아니고 결국 남편을 구원하는 일이 되고, 남편의 기를 살리는 일이 됨과 동시에 남편에게 사랑받는 비결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만큼 여성의 매력은 목소리 크게 내고 남편을 이겨먹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복종과 존경에 있는 것이다.
베드로전서 3장1절을 보면, “아내들아 이와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이는 혹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다.
나는 대표적으로 우리 어머니를 보아서 알고 있다. 아버지는 술꾼, 놀음꾼이라고 말하면 딱 맞다. 그러나 어머니의 그 정결한 행실로 인해 아버지는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존경을 맏는 아버지가 되었다.
오늘부터 여러분은 실천하라. 세상풍조는 변해도 하나님의 말씀은 바꾸지 않는다. 그래서 진리이다.
그렇다면 남편은 지금도 가정의 어른이며, ‘아내의 머리’이며, ‘몸의 구주’이다(23절).
따라서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라”(24절). 입맛에 맞는 것만 골라서 복종하라가 아니다. 모든 일에 복종하라는 것이다.
그렇게 될 때에 자신도 행복하게 되고 온 가정 전체가 행복의 첫걸음이 되는 것이다.
2.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라
이 말씀 역시 그리스도 중심적이 되어야 한다. 25절을 보라.
“냠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주심같이 하라.”
교회는 ‘피로 사신 교회’이다. 이 말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해서 자기 몸을 아끼지 않으시고 기꺼히 십자가 위에서 다 내어주셨다.
그것은 ‘사랑’ 때문이었다.
여러분들도 아내를 그렇게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내를 위해서 ‘자기 희생’을 할 줄 아는 남자가 멋진 남자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자기 밖에 모르는 남자’들이 많다. 아내가 아프면 “어디가 아파? 병원에 가면 되지!”하고 그 다음에 하는 말이 “당신은 맨 날 아프냐?”고 매정하게 그러는 남자들이 많다.
결혼 전에는 여자 말이라면 죽을 뚱 살 뚱 말이 떨어지기 전에 “뭐가 필요하냐? 다 들어줄께!” 하던 남자가 결혼 후에는 아내에게 무관심하고 또 늦게 들어오고 맨 날 취해서 들어오고, 심지어 며칠씩 휴대폰 꺼놓고 잠적해 버리는 남자도 있다.
타락한 인간의 본성이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기본적인 것을 몰라서라기 보다는 그 마음 속에 포도원을 허는 여우가 들어있기 때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자가 자기 아내이어야 하는데 자기 아내는 꼴물건으로 보이고 남의 여자는 마냥 귀녀로 보이는 남자의 마음 속에 무엇이 들어있을까 생각해 보라.
이런 우리들을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피로 우리를 씻어주시고 거룩하게 하셨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아끼고 사랑하시는 것처럼 아내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우리 남자들은 이제부터 ‘거룩하고 흠이 없는 자’로 바꿔진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런 마음가짐 속에서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28절).
아내를 학대하는 것은 곧 가지를 학대하는 것이 되며 아내를 상처내는 것은 자기 자신을 상처낸 결과가 되는 것이다.
반대로, 아내를 사랑하는 것은 곧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결과로 돌아오게 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가 성경의 원리대로 살면 모든 가정은 행복할 수밖에 없다.
3. 자녀는 부모에게 순종과 공경을, 부모는 자녀에게 교훈과 훈계를 하라
우리는 이 말씀을 어버이주일 때마다 들어왔다. 그러나 이 말씀은 그 때만을 위한 말씀이 아니고 우리 평생에 지녀야 가정생활 지침이다.
1)자녀는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해야 한다.
자녀는 부모님이 ‘나를 낳아주셨다’는 것만으로도 공경해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내 의견을 첨가할 수 없다.
고의로 하나님의 뜻을 어기라고 한 것 말고는 부모님께 순종해야 한다.
지난 날 나는 늘 어린이들에게 이런 설교를 했다. “만일 여러분의 부모님이 교회 못 나가게 하고 예수를 못 믿게 하는 경우에 어떻게 할 것인가?”
이것만은 부모님의 뜻에 거역해도 된다고 가르쳤다. 왜냐하면 부모보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선순위로 말할 것 같으면 하나님이 먼저라는 말이다. 이것을 알고 실천한 아이들은 나중에 모두 훌륭한 크리스천이 되었다.
그러나 이것 말고는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아이로 자라야 한다. 이것은 그 자녀가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는 비결이 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낳아주기만 하고 버린 부모라도 찾으려고 해야 한다.
2)부모는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많은 부모들이 자녀를 함부로 생각없이, 개념없이 대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지나친 과욕이 과외 열풍을 만들어냈다.
그래서 아이들은 화가 나 있다. 개성을 존중해 주고 거기에 걸맞게, 취미에 맞게 공부를 시켜야 하는데 우리 사회는 아직도 고등학생을 일류 학원강사를 만들려는 것 같은 교육을 하고 있다.
그리고 자녀에게 부당한 것을 강요하고 또 말도 안 되는 것을 가지고 지나치게 야단을 하거나 매질을 하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 자녀는 노여워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 크리스천 부모는 이런 시대일수록 자녀교육을 ‘주의 교훈과 훈계’ 위주로 교육을 시켜야 한다.
학교공부는 잘 하지만 예절도 없고, 버릇도 없는 아이로 키워서는 안 된다.
학교 성적은 우수하지만 신앙에 있어서 낙제라면 자녀교육을 잘못한 것이 되고 만다. 오히려 반대가 될지라도 좋다.
주의 교훈과 훈계로 키운 아이의 장래는 하나님이 책임져 주신다.
이것을 분명히 믿어야 한다.
“어머님이 읽으며 눈물 많이 흘린 것 내가 지금까지 기억합니다!”
예수 십자가의 복음을 알고 그 복음 안에서 인간과 세상을 바르게 볼 줄 아는 아이로 키운다면 이런 아이들이 커서 인류와 세계 역사를 바르게 이끄는 주역이 되는 것이다.
오늘 우리는 우리 자신을 돌아보자.
우리 가정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가정상을 지녔는가? 그렇지 않다면 회개하고 마음을 돌리자.
아내는 남편을 복종하고 존경하는가?
남편은 아내를 자기 몸처럼 사랑하는가?
자녀는 보모를 공경하고 순종하는가? 부모는 자녀를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