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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사람의 생활 양식(1)

좁은길을 걸으며 2010. 6. 16. 20:07

 

덕진공원 

 

새사람의 생활 양식(1)

성경/에베소서 4장 25-32절                                 2010년 6월 13일                        이송로목사

 

 

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사람이 되었다. 그렇다면 그에 따른 삶의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오늘의 현실은 그렇지 않는 것을 너무나도 많이 보게 된다.

적어도 예수를 믿고 복음을 깨달았다면 그에 따른 합당한 반응이 일어나야 한다.

그런데 옛사람 그대로라면 분명히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이다.

신앙이 잘못되었든지, 아니면 병들이었든지, 아니면 근본적으로 거듭나지 못했든지 그 중의 하나일 것이다.

 

 

1. 거짓을 버리고 참을 말하라

거짓은 인간을 처음부터 속이고 들어온 마귀의 수법이었다.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요8:44). 그런데 우리가 거짓말을 하고 말꼬리를 돌리는 것을 좋아한다면 그 사람을 어떻게 신뢰할 수 있을까?

교회 안에서만 아니라, “각각 이웃과 더불어” 그렇게 하라고 말씀한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 지체가 됨이라”고 가르쳐 준다.

사회공동체 속에 크리스천이 들어가면 새로운 사회가 된다. 우리 한국이 이 만큼이라도 신용사회가 된 것은 어느 부류의 사람들 때문일까?

우리 민족성? 불교? 유교? 아니면 토속 신앙? 그 어느 것도 아니다.

기독교 복음이 이 땅에 뿌리를 박았기 때문에 그 영향력으로 인해 우리 사회가 이 만큼이라도 밝아졌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교회가 교회역할을 못하고, 신자가 신자 역할을 못하는 경우에 그 욕이 교회에게로, 신자들에게로 돌아오게 되는 것을 보게 된다.

아직도 이 땅에 거짓이 만연한 것은 우리 크리스천들의 책임이다.

크리스천은 어디가나 참을, 진실을 가지고 말할 줄 알아야 한다. 임기응변으로 둘러다가 붙여대는 사기꾼들과 같이 살아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의 진리를 따르는 우리들이 이 사회를 더욱 밝고 아름다운 신용사회로 만들어가야 한다.

 

 

2. 분을 끓이지 말라

분을 낼 일이 없으면 좋겠지만 살다보면 분을 낼 때가 많이 있다. 그러나 분을 자주 내는 것은 옳지 않다.

분은 끓는 물과도 같아서 이것이 넘쳐버리면 큰 실수로 드러날 때가 많다.

의분(義憤)이라는 것도 있다. 그렇다. 우리가 불의를 보고 웃을 수만은 없다. 또 모른 채 해도 안 될 때가 있다.

이럴 때 의분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예로써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돈 바꾸며 더러운 이권에만 마음을 쏟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의분하셨다.

그러시면서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드는도다”(마21:12,13)하면서 호통을 치셨다.

우리는 감정적으로 분을 내었을지라도 “죄를 짓지 말며”라고 말씀하고 있다.

미워하다가 죽일 생각까지 갖는다면 그것은 정당했어도 마귀에게 굴복당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따라서 분을 내어도 “마귀에게 틈 탈 기회를 주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는 ‘홧김’에 무슨 말을 함부로 하거나, 또는 결정적인 말을 하기가 쉽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그것이 얼마나 바보짓이었는가를 알게 되고 후회하게 된다.

엎지러진 물을 주어 담기 어렵듯이 홧김에 한 말이라도 해서 쉽게 거둘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미 상대방에게 큰 상처가 되었을 수 있기 때문에 그렇다.

 

마귀는 우리를 살살 약을 올려서 화내게 하고 죄짓게 만드는 원수이다. 우리는 그 원수에게 속지 말자는 얘기다.

우리는 “해질 때까지 분을 품지 말며”, 이 말씀에 유의해야 한다.

좋지 않은 감정, 상대방을 미워하는 마음을 오래 가지고 있으면 손해보는 쪽은 항상 ‘자기 자신’이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분노를 던져버려야 한다. 그야말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천하는 사람이 건강하다. 그렇지 않으면 속에서 분노를 끓이기 때문에 ‘홧병’에 죽기도 하고, 다른 질병을 몰고 오게 되고 괴팍한 성격으로 변하여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이 되고 만다.

 

 

3. 도둑질하지 말라

도둑질의 근원이 무엇일까? 그것은 게으름이라고 말하고 싶다. 잠언서에서는 게으름에 대해서 수없이 반복해서 질타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생각을 바꾸면 된다. 그것이 지름길이다. 남에게 의지해서 뜯어만 먹고 사는 것도 일종의 도둑이다.

몸이 성하면서도 일하지 않는 사람은 정신 속에 게으름이 꽉찬 사람이다.

게으름을 추방시켜라.

예수님은 그 생애 동안 정말 부지런하셨다. 때로는 식사할 겨를도 없이 바쁘셨다. 그리고 십자가를 지시기 전 한 주간은 정말 바쁘게 움직이셨다.

 

나의 육신의 아버지도 부지런 하셨다. 지금도 마찬가지인 것을 본다.

우리가 부지런해야 할 이유는 남에게 손 안 벌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도록”(28절)하기 위해서이다.

우리 민족은 세계 어느 민족보다 부지런하다. 복 받은 민족이다. 새벽기도가 이 나라를 살렸다.

이 부지런함이 받는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바뀌게 만들었다. 여기에다가 그리스도 정신을 곁드리니까 더욱 매력있는 나라가 되었다.

 

 

4. 선한 말을 하라

새사람이 되었으면 말도 달라져야 한다. 말끝마다 욕을 한다든지, 예의 없는 건방진 말을 불쑥불쑥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말에 실수가 많은 사람은 이 문제를 놓고 기도할 수 있어야 한다.

“여호와여, 내 입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나의 입술의 문을 지켜주소서”(시143:3)

 

1)더러운 말을 내지 말자

음담패설을 하지 말자. 욕설을 퍼붓지 말자. 저주의 말을 하지 말자. 찍는 말을 하지 말자. 극단적인 말을 하지 말자.

비꼬거나 비웃는 말을 하지 말자.

 

2)덕스러운 말을 하자

우리 예수님의 입은 항상 덕스러운 말씀만 하셨다. 그러시면서 “선한 사람은 그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마음에 쌓은 악에서 악을 내느니라”(눅6:45)고 하셨다.

우리가 선한 말, 즉 덕스러운 말을 할 때에 듣는 사람들에게 은혜를 끼칠 수가 있다.

 

 

5. 성령을 웃게 하자

우리는 우리 안에 성령이 계심을 알아야 한다. 성령이 안 계시면 새사람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 안에 성령이 계시다는 것을 의식하며 사는 것이 신자이다.

그런데 우리가 죄짓고, 기도생활을 게을리 하고, 세상 쾌락을 좇아가며 교회생활을 멀리하며, 복음진리에서 멀어질 때에 우리 속에서 성령은 근심하시게 된다.

그것이 더 큰 죄인 것이다.

우리는 성령을 기쁘시게, 성령을 웃게 해 드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取捨選擇(취사선택)-取(취할 취) 捨(버릴 사) 選(뽑을 선) 擇(가릴 택)의 문제가 매우 중요하다.

31절을 읽어보라.

 

버릴 것-모든 악독, 노함, 분냄, 떠드는 것, 비방하는 것-이것들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버릴 것은 얼른 버려야 한다.

 

취할 것-32절을 읽어보라. ‘서로 친절, 불쌍히 여김, 서로 용서, 그 용서는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하라”. 이것이 우리의 체질(생활 패턴)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30절).

성령의 인치심을 받은 여러분이 곧 새사람이다. 새사람다운 삶의 패턴이 자연스럽게 따라와야 한다.

우리 주님은 우리의 지난 허물 때문에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셨다. 그리고 우리에게 이와같은 삶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고 하셨다.

따라서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 이것을 가지고 심판하실 것이다.

 

1. 거짓을 버리고 참을 말하자

2. 분을 끓이지 말자

3. 도둑질하지 말자

4. 선한 말을 하자

5. 성령을 웃게 하자.

 

그럴 때에 하나님께 영광이 돌려지는 인생을 살아갈 수가 있는 것이다. 성령이 웃으실 때에 우리 예수님도 웃으신다. 바로 여기에 생명과 평안이 넘치는 행복한 삶이 따르는 것이다.